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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통과 전략과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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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통과 전략과 음모

입력
2006.12.18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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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는 현존 사회철학자들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그는 이미 우리나라를 다녀가면서 우리의 높은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의 사상은 아직도 충분히 연구되지 않고 있다.

● 바람직한 사회의 기초는 소통

이런 가운데 그의 최고의 저서로 꼽힐 수 있는 <의사소통행위이론> 이 한림대 장춘익 교수의 수년간의 노고를 통해 올해 초 완역되어 나왔다. 천삼백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을 번역할 시간과 에너지라면 그는 십여 편의 논문을 써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승진에 필요한 정량평가로 따지자면 논문 한 편 점수에 불과한 일이니, 그의 노력은 순전히 학문적 봉사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이 책을 완독시키고 싶어서 동국대 홍윤기 교수와 함께 공동 세미나를 열었다. 두 학교 대학원생 20여명과 매 세미나마다 적어도 6~8시간을 투자해 한 학기 만에 결국 다 읽어 내었다. 매주 근 100페이지씩을 소화한 셈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소통이 무엇인지, 오늘의 사회에 어떤 실제적, 학문적 중요성을 갖는지를 세밀히 보여준다. 소통은 자신의 행위의 의도와 목표를 분명하게 드러낼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바람직한 사회의 근본을 형성한다. 이에 반해 전략은 행위의 의도가 은폐된 채 이루어진다.

협상이나 거래의 경우에 전략은 필수이므로 전략적 행위가 반드시 나쁠 이유는 없다. 오늘의 사회적 관계는 소통과 전략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다. 전략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은폐된 의도가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거나, 남을 해치려는 의도를 가진 경우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음모이다. 음모란 남을 해치려는 의도 하에 계획적으로 진행되는 사악한 과정이다. 흥미 있게도, 음모론은 과학적 탐구 과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 드러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원인의 과정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이다.

그래서 음모론은 마치 과학적 근거가 있는 듯 실제 상황에서는 나름의 모종의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음모와 과학적 탐구 과정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후자는 분명한 방법을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반면, 음모론은 입증가능하지 않은 추정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음모론 자체가 하나의 음모인 경우가 많다.

● 사학법 다루는 국회 소통에 문제

하버마스는 소통이 전략적 행위의 토대라고 주장한다. 소통적 관계가 전제되지 않으면 전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통 없는 전략이나 음모는 폭력이다. 기본적 소통의 관계가 바탕에 있을 때에만 소통과 전략이 잘 어우러지는 건전한 사회적 관계, 합리적 관계가 가능하다. 음모론이 등장할 때 모든 관계는 까칠해진다.

초ㆍ중등학교의 교사회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평등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은 거의 듣기 힘들다. 이런 취지에서 사학법 개정의 필요에 공감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사학법을 다루는 국회의 모습을 보면 거기서부터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국회의원 대화기본법"과 같은 법은 없을까?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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