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설립, 운영하는 공립박물관이 겉돌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은 건립비 가운데 국비 30%를 지원 받아 완공했거나 건립할 예정이지만 대부분 박물관이 유물을 확보하지 못해 껍데기(건물)만 남아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볼 만한 전시품이 없으니 관객이 없고, 관객이 없으니 적자폭이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효율성이나 향후 운영방안 등을 따져보지 않은 채 ‘일단 짓고 보자’며 단체장들이 밀어붙인 결과이다.
●외국유물로 채워진 향토박물관
경기도립박물관은 지난해 유물구입비의 60%인 15억원을 들여 중국에서 한나라와 청나라시대 복식 및 유물을 구입했다. 반면 국내 유물을 구입하는 데에는 겨우 10억원을 사용하는데 그쳤다. 박물관 개념에 맞는 국내 유물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충남 천안시는 내년 11월 삼용동에 410억원을 들여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2,000평 규모의 시립 천안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천안박물관이 현재 확보한 유물은 겨우 3,807점. 책자와 고문서가 1,489점 그림 122점 민속품 876점 근대자료 1,270점이며 지역출토 유물은 50점에 불과하다. 지역을 대표할 만한 국보나 보물 등은 단 한점도 없다. 시는 대학이나 국립박물관 등의 유물을 대여한다는 계획이지만 뜻대로 될지 의문이다.
전북 군산시도 군산앞바다에서 발굴된 후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 보관중인 유물을 전시하기위해 100억원을 들여 연건평 1,000여평 규모의 시립박물관을 2010년 개관키로 하고 내년 착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목포해양유물전시관측이 유물을 돌려줄지는 미지수다.
경기 성남시는 분당 판교택지개발지구에 2011년까지 400억원을 들여 연면적 3,000평 규모의 시립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당초 시는 공연예술 대본과 소품 무대모형 등 유물구입에 큰 어려움이 없는 공연예술박물관을 구상했다가 역사박물관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30여년의 역사에 불과한 시로서는 적합한 향토유물을 구하기 막막하다.
유물 확보가 안돼 박물관 건물을 다 완공하고도 개관을 연기한 곳도 있다. 대전 노은 선사박물관은 올해 5월에 완공, 9월에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확보한 유물이 석기류와 토기 등 300여점에 불과하고 그나마 복제품이어서 유물확보를 위해 개관을 미뤘다.
대전시 관계자는 “대전에는 시립박물관이 없어 출토 유물들이 국립 공주박물관이나 대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며 “유물들을 돌려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연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볼 거리 부족-관객 외면 악순환
전남 담양군 한국대나무박물관은 소장품 대부분이 죽제품 경진대회 입상작들이어서 박물관보다는 전시관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900여 소장품 가운데 박물관에 어울리는 것은 옛 죽제품 324점과 외국제품 400여점뿐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죽세공예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옛 죽제품을 많이 확보하려고 하지만 대나무의 특성상 보존도 쉽지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국비와 시비 등 95억원을 들여 8월 문을 연 전남 목포 한국산업도자전시관도 마찬가지다. 개관전에 5억원을 들여 생활도자기 등 1,668점을 구입하고 4,800여점을 기증 받았지만 눈길을 끌만한 전시물은 거의 없다. 더욱이 신안해저유물 등 도자기관련 유물이 풍부한 인근 해양유물전시관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
시는 전시품이 확보되기 전까지 일부를 옥공예품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어서 당초 전시관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시관은 이달말까지 입장료가 무료이지만 관람객은 하루 100명도 되지 않아 내년부터 운영비(연 3억원)는 시민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판이다.
일부에서는 “국비를 지원받기 위해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단체장의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결과”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김경윤 박물관 정책과장은 “박물관의 핵심은 소장가치가 있는 유물을 얼마나 보유하는가에 달려있다”며 “단체장들의 업적과시 차원에서 우선 건물만 세우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박물관을 유지하기위해 매년 수억원의 운영비를 들여야 하는데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기초단체의 경우에는 재정에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몇 개 자치단체를 묶어서 거점별로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택회기자 thheo@hk.co.kr 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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