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는 15일 광주에서의 아침을 무등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보다 일찍 맞았다. 평소처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났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특강장인 광주무등파크 호텔로 가 있다. 그는 광주ㆍ전남 경영자총협회 초청 특강을 시작으로 이날 하루만 광주 나주 목포 등을 돌며 7개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정치적 근거지인 호남 방문 기회를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어느 때보다 빡빡한 스케줄을 잡은 것이다. ‘분테크’도 한가하고 ‘초테크’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올들어 다섯번째 광주 방문, 지지율 정체로 고전하고 있는 그가 호남 민심 잡기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설명해 준다.
특강에서 고 전 총리는 여느때처럼 “중도대통합만이 선진강국의 길”이라며 통합신당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남도지사 시절 신장 결석이 생겼지만 격무로 인해 수술을 못하고 헬기를 타며 도정을 챙겼는데 그로 인해 결석이 자연 배출됐다는 ‘신비스런’일화도 소개했다. “다정(多情)때문에 생긴 병이 다정으로 나았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전 10시. 고 전 총리가 버스에 올랐다. 기자에게 “버스로 모시겠다”는 농도 던졌다. 본격적인 호남 투어에 나선 것이다. 광주 하남공단의 기업 두 곳, 나주 세지면의 멜론 단지, 목포 유달산, 목포시청ㆍ전남도청 방문 등 강행군이었다.
민감한 질문들을 던져 보았다. 구체화 기미가 없는 신당 추진 원탁회의에 대해 그는 “정치권이 진로를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돼 있다”며 “출범시기를 탄력적으로 하려 한다”고 말했다. 늦어질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대안 정치질서의 형성 시기를 내년 3~4월로 보고 있다”며 신당 창당 시기를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각 당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열린우리당의 통합신당파, 민주당 의원들과 수 차례 만난 사실도 귀띔했다. 신당 출범에 자신감이 붙은 듯 했다.
“왜 이명박 박근혜씨가 아니라 고건이어야 하나”고 묻자 고 전 총리는 한참 생각했다. 그는 “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국가지도자의 자질로 국정운영 능력, 국민통합 능력, 안정감, 도덕성, 개혁성 5가지가 제시됐다”며 “검증 받은 국정운영 능력과 국민통합 능력에 대해 국민들이 평가해 주리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냐”고 하자 그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여권후보로 언론에 언급되는 것에 대해 억울해 하며 “새로운 대안정치 세력의 후보로 표현해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는 올 들어 처음 찾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 목포에서는 예정에 없던 유달산 방문 일정을 일부러 잡았다. 목포의 상징인 유달산에 올라 고 전 총리는 “지사 시절 유달산에 와서 저 건너편 섬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나의 젊음과 땀, 정성을 들인 곳”이라고 말했다. 목포시청과 전남도청 방문 일정까지 마치고 나서야 고 전 총리는 서울행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오후 7시였다. 젊은 기자도 소화하기 힘든 강행군이었지만 고 전 총리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짙은 어둠이 한창일 때 서울에 도착한 그는 종로구 사무실에서 참모들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회의를 한 뒤 자정이 다 돼서야 동숭동 자택으로 향했다. 귀가하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자신감과 신당 창당에 대한 부담감이 함께 오버랩됐다.
광주ㆍ나주ㆍ목포=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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