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버크 지음ㆍ장석봉 옮김 / 바다출판사 발행ㆍ520쪽ㆍ1만8,000원
11세기 유럽의 상속법은 장남이 유산을 독차지하도록 돼 있었다.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장남이 아닌 아들들이 주로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고 유럽은 전쟁을 하면서 향신료를 접할 수 있었다. 후추 생강 등 향신료 확보를 위한 국제무역이 시작됐고 이는 다시 차 아편 무역으로 이어졌으며 식물분류학에 대한 관심을 낳았다.
1798년 이집트를 원정한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의 멋진 숄을 들여왔다. 숄은 삽시간에 프랑스 사교계를 휩쓸었고 곧 자카르식 직조기의 생산을 가져왔다. 직조기는 다시 미국 공학자 허만 홀러리스가 천공카드를 이용한 계산기를 발명하는 계기가 됐고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의 탄생 원리가 됐다.
역사에서는 이렇듯 단순한 발견이 우연이나 혹은 다른 이유로 서로 연결되는 일이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도 우연한 사건이 빚어낸 수백 만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핀볼 효과’는 다른 시공간 속에 흩어져있는 사소한 사건이나 발명이 어떻게 연결되고 증폭되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가는지를 탐색하는 책이다. 볼펜, 가발 등 사소한 소재에서부터 고급 수준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연결고리가 불분명해보이는 것들을 가로지르며 상호연관성을 밝혀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인간 두뇌 속의 모든 지식은 결국 네트워킹을 통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연결짓기에 다소 무리한 면도 있지만, 역사적 사건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은 수긍할 만하다. 그것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건과 사건, 사건과 인물, 인물과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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