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역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논란거리도 많았다. 서늘한 미스터리로 시작해 국제이슈로 떠오르면서 우리 과학수사의 진면모를 과시했던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 전국을 도박의 격랑 속에 빠뜨린 ‘바다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한 연쇄살인범, 초등생 고교생 성폭행 살해 사건 등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흉악범죄에 노출돼 있음을 방증했다. 국민은행 프라이빗뱅킹 권총 강도, 도심집회 논란까지 올해 사건과 이슈를 돌아본다.
7월 2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프랑스인 가정집 냉동고에서 젖먹이 시체 2구가 발견됐다. ‘누가’ ‘언제’ ‘어떻게’ ‘왜’라는 궁금증이 꼬리를 문 이 사건은 집주인 장 루이 쿠르조(40)와 부인 베로니크(39)가 친부모로 밝혀지면서 한국과 프랑스 국민을 경악케 했다.
유력한 용의자 쿠르조 부부가 프랑스에 머무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지만 수사팀은 끈질긴 집념으로 사건을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베로니크가 2003년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조직세포 표본을 확보해 숨진 영아들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였다. 쿠르조가 영아들의 친부라는 사실도 칫솔 등에서 확보한 DNA로 확인했다.
줄곧 범행을 부인하다 10월 프랑스 사법당국에 구속된 베로니크는 결국 “임신 중 살해 충동을 느껴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목졸라 죽였다”고 실토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DNA 감식으로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완벽 해결, 한국 경찰의 과학수사 저력을 떨치며 프랑스 사회의 오만한 시선을 보기 좋게 누른 것이다.
프랑스 당국은 쿠르조 부부 기소를 위한 사법절차 마무리를 위해 수사판사 등 조사진을 1월 한국에 파견할 예정이다. “아기들의 죽음은 물론, 아내의 임신 여부도 몰랐다”고 부인하는 쿠르조의 공모 여부 등에 대한 보강 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외국 수사진의 한국 수사당국 방문 역시 보기 드문 일이다. 방배경찰서 천현길 강력팀장은 “이런 선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에서 수사권이 없는 프랑스 수사진을 대신해 추가 증거자료 확보나 진술 청취 등을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경찰주재관 박찬호 경정
“한국을 보는 프랑스인의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박 경정은 15일 “사건 초기 한국 경찰이 프랑스인을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프랑스 언론의 비난이 많아 속앓이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도대체 어디 있는 나라냐’는 식으로 삐딱한 시선이었다. 하지만 냉소가 찬사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 언론은 극단적 이기주의 등 사회 병리현상을 반성하는 특집보도와 생방송 토론회를 연일 내보냈다. 박 경정은 “한국 경찰이 콧대 높은 프랑스 사회가 자성(自省)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라디오프랑스인터내셔널 서울특파원 올리비에 토마씨
현장에서 사건을 지켜본 토마씨도 처음에는 한국 경찰의 발표를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프랑스 사회의 정서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 내용 때문이었다. 토마씨는 “프랑스인이 의심을 품은 것도 이 때문이지 한국의 수사능력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으로 특히 곤혹스러웠던 점은 한국인의 격해진 대 프랑스 감정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프랑스인들에게 사건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실제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아직까지 이 사건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