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지음/문학동네ㆍ312쪽ㆍ9,500원
아들은 아비 목 조르고, 아비는 콜라병으로 아들 머리 후려치고, 딸은 아비에게 야동본다 조롱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병신"이라 윽박지르고…
전혀 웃기지 않는다. 유머도 허풍도 없고, 입담도 능청도 연민도 페이소스도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의 소설이 아닌가. 한 번쯤은 책 표지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저자명을 확인하고 싶을 만큼 살풍경이 당황스럽다. 즐거워서 아름다웠던 그의 세계를 사랑해온 이라면 모종의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소설가 성석제(46)씨가 2년 만에 새 소설집 <참말로 좋은 날> 을 냈다. 그러나 속지 마시라. 7편의 중ㆍ단편이 묶인 이 책은 21세기판 <운수 좋은 날> 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억세게 좋지 않은 날’들을 엮어놓은 책이다. 운수> 참말로>
미국의 여동생이 사둔 강남의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해 남동생과 경쟁을 벌이던 형은 휴대폰을 빌려주지 않는 아들과 패륜의 살육전을 벌이다 ‘알량한 연립주택 한 칸’을 모조리 태워먹고(<아무것도 아니었다> ), 신용불량자여서 생활불량자가 된 무명의 화가는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떼이고선 집을 잃고, 말을 잃고, 아내를 잃고, 딸을 잃고, 종내는 삶을 잃는다(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 저만치> 아무것도>
고귀한 것만 먹고, 고귀한 것만 입으며, 고귀하게 살아가던 ‘웰빙 전도사’는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 인도 아래로 한 발을 떼어 놓았다가 허망하게 차에 치이고(<고귀한 신세> ), 주사와 가식과 짜증으로 점철된 어색한 술자리는 인간의 동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파행으로 끝나고 만다( <악어는 말했다> ). 이곳은 잔혹한 동물의 왕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세계다. 악어는> 고귀한>
문장은 짧고, 서술은 강퍅하다. 욕설이 아니면 침묵이고, 허탈이 아니면 비애다. 현실 속 그 장면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소설 속 상황들은 문자로 읽는데도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아들은 아버지의 목을 조르고,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후려친다.
딸은 아비에게 “너도 밤낮 놀지 않느냐. 너는 사이버머니 갖고 고스톱 치고 야동 보고 놀면서 왜 나는 못 놀게 하느냐”고 따지고, 남편은 귀가 들리지 않는 아내에게 “왜 아니꼽숑? 꼬우면 찢어지자고. 애 데리고 장모한테 가”라고 윽박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병신”이라고 욕을 해댄다.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보고 싶진 않은 인간의 밑바닥. 웃음기 가신 싸늘한 얼굴로 그 최저점을 전하는 화자의 모습이 화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만담가를 보는 것처럼 서운하고 서글프다.
읽는 이의 부아가 치밀 정도로 생생하고, 집요하고, 적나라한 언어의 난도질은 ‘이곳이 당신이 사는 세계’라는, 끔찍이도 사실적인 현실 인식에 복무한다. 골계든 해학이든 농담이든 그 무엇도 구사하려는 의지가 없어보이는 화자는 가성(假聲)을 쓰지 않은 생목소리로 법과 돈과 권위와 희망에 포섭되지 못한 채 갈 데까지 간 인간들의, 생활세계의 극한에 몰린 추방자들의 몸부림을 세밀하게 데생할 뿐이다.
이 모든 변화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내가 바뀐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바뀌는 게 당연한가. 그럴지도 모른다.”(<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이 낯선 말투는 또 다시 옳다. 아마도 우리는 수긍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독자는 말하고 싶다. “아, 웃을 수도 없는 이 끔찍한 생이여.” 작가의>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