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 자신을 직업적인 순례자라고 생각하는 적이 있다. 연극을 향한 경외심과 신성함이 사라진 자리, 의무와 습관만이 남아 여기저기 극장을 기웃거리는 형국을 자조하는 것이다. 지난 주만 해도 여러 편의 연극을 ‘순례’다녔다. 그리고 성당의 기도실과 수녀원장실이 주 무대인 초연작 <다우트> 를 만났다. 다우트>
이 연극은 2005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이자 토니상, 오비상, 뉴욕비평가협회 최고상 등을 수상한 존 패트릭 쉔리의 작품이다. 수준 있는 번역극 공연물로 흥행몰이 및 극단의 성가를 유지하고 있는 실험 극단이 무대에 올렸다.
원제(Doubt)처럼 희곡은 신과 인간, 타인과 자신, 선의와 악의 등 의혹과 확신 사이에서 서성이는 인간성의 일면과 진실 규명의 불확실성을 탄탄한 성격 구축을 통해 치밀한 극적 논리로 끌어가는 작품이다. 지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희곡에 담긴 세부적인 무늬들을 꼼꼼히 살피고 무대화하는 연출가 최용훈의 역량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꽃피우지는 못했다. 원장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박진감 있는 추리 구조와 탐문 과정을 좇기에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가 너무 컸다. 무엇보다 성격화 작업에서 흔들린 점이 가장 아쉬웠다. ‘스타’ 김혜자의 대중적인 이미지인 온화한 어머니상과, 무대가 필요로 하는 단호하고도 도덕적 결벽증에 사로잡혀 있는 엘로이셔스 원장 수녀 사이에서 자주 흔들리고 있었다. 공연 전반부 금욕적인 수녀원장과 개방적인 젊은 신부(박지일 역) 사이의 성격 대비와 갈등이 인간성의 살아있는 자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성격 유형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배우 김혜자가 지닌 특유의 신뢰성 때문에 원장 수녀의 판단만이 ‘진실’로 느껴지는 역설에 처해진 것이다.
이로써 극은 ‘진실을 알 수 없음’의 결말에 이르지 못한다. 또한 사랑과 박애를 내세우는 종교 제도 안에 숨은 성(性)과 지위 간 권력 쟁투의 아이러니를 폭로하고 신념의 명목 아래 동성애와 인종차별 등 비주류적 삶을 차별하는 보수적 가치관을 가압함으로써, 안으로 상한 우리 삶의 전체성을 돌아보게 한다는 이 연극 고유의 치유적인 테마도 그만치 약해졌다.
어떤 연극의 제목은 그 연극을 만드는 이에게 자기 예언이 되기도 한다. 원작과 관객 사이를 잇는 해석과 공연 방식에 대한 ‘의심’이 제작진에게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연극 <다우트> 는 내년 3월에 다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2007년 3월 15~5월 20일 학전블루 소극장. 극작ㆍ평론가 다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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