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심판은 상대편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한국에 불리한 판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의 189㎝의 센터백 올가 아지데르스카야(4득점)가 전반전에 보여준 실력은 무시무시했다.
14일(한국시간) 새벽 알 가라파 인도어홀에서 벌어진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한국-카자흐스탄의 결승전. 한국은 전반 21분까지 8-12로 뒤졌다. 지난 12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와의 4강전에서 심판들의 뻔뻔한 ‘편파 판정 퍼레이드’에 충격의 패배를 당했던 남자 핸드볼 대표팀의 ‘악몽’이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순간.
그러나 핸드볼의 ‘여성 전사’들은 빠른 속공으로 정면 돌파했다. 결과는 29-22의 승리. 선봉에 섰던 것은 유부녀 선수들이었다. 야구 축구 농구 등 수 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남자 프로 선수들도 맥없이 나가 떨어졌던 도하에서 한국에게 첫 구기종목 금메달을 안겨주며 치욕을 씻은 것은 ‘아줌마’들이었다. 이로써 여자핸드볼은 5연패를 달성했다.
쉽게 물러나지 않는 아줌마 근성
“남자 핸드볼 경기를 보고 울분이 터졌다. 우리 금메달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번 대회 30골로 한국 선수 가운데 최다 득점을 기록한 우순희(28ㆍ삼척시청)는 말했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직후 결혼한 우순희는 고교 시절부터 빈혈 증세에 시달려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 경기 후 “귀국하면 몸보신부터 해야겠다”며 지친 표정을 지었지만 코트에서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공으로 카자흐스탄 골문을 유린했다.
그 외 결혼 7년차에 접어드는 허영숙(31ㆍ덴마크 콜딩)과 지난 6월 결혼한 ‘새댁’ 허순영(31ㆍ일본 오므론)도 후배들을 다독이며 정상을 지킨 주역들.
강태구 감독은 “가정도 버리고, 멀리 까지 와서 제자 뻘 후배들과 함께 하루 6,7시간의 강훈련을 소화해냈다. 정말 아줌마들의 힘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편파 판정의 빌미를 없앤 속공 작전
강태구 감독은 카자흐스탄을 맞아 초반부터 과감한 속공 작전을 폈다. 정상적인 공격을 펼칠 경우 몸싸움 과정에서 심판들의 편파 판정이 속출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경기 초반 여러 차례의 실책으로 한국의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체력이 약한 카자흐스탄 선수들은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인 한국 선수들을 따라잡느라 제풀에 지쳐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전반전 위협적인 공격을 선보였던 장신 센터백 아지데르스카야는 후반전엔 거의 벤치를 지켰다.
강태구 감독은 “카자흐스탄 선수들이 체격에 비해 체력이 약한 점을 파고들었다. 후반전 상대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하(카타르)=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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