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제주도로 유학간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부인을 만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제주도로 내려간다.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서귀포 근처 영어전용타운에 들어서자 아이들간의 대화도, 보이는 간판도, 공부하는 책도 대부분 영어다. A씨는 아들이 5학년이 될 무렵 서울로 데려왔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다시 제주도로 보낼 생각이다. 외국대학 진학을 준비시키기 위해서다.’
정부는 14일 교육과 관광, 의료, 문화콘텐츠 등의 발전방안을 망라한 ‘서비스사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이르면 2010년부터 문을 열려고 하는 ‘제주 영어전용타운’이다. 해외로 나가는 조기유학, 영어연수를 국내로 흡수해서 서비스 적자를 해소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정부 구상대로 영어전용타운이 과연 건설이 될 수 있을지, 설령 건설된다 해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물음표 투성이다.
우선 정부가 구상하는 영어전용타운의 규모(115만평)는 여의도 면적(80만평)의 1.5배이다. 수업과 생활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 초ㆍ중ㆍ고와 대학은 일반학교의 모든 과목을 가르치지는 않지만, 정식 학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모두 자립형 사립학교로 운영된다. 현재 지자체가 운영중인 ‘영어마을’은 길어야 몇 주 정도 공부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 초등학생들은 1년이나 2년 정도 이 곳에 살면서 영어몰입교육과정에 참여한다. 중ㆍ고생들을 대상으로는 외국대학 진학을 위한 교과과정도 운영된다. 물론 학원과 각종 영어교육센터도 생기고, 휴양형 아파트와 상가도 들어선다.
학비는 일반학교보다는 비싸지만, 적어도 호주나 싱가포르에 조기유학 보내는 것 보다는 싸게 책정될 방침이다. 또 이 곳이 제주도 도유지이기 때문에, 장기 저리로 땅을 임대한 뒤 주택ㆍ상업지구 개발이익의 일부를 서민ㆍ중산층 자녀 장학금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무조정실에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내년 상반기중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장 교육계의 반대여론이 뜨겁다. 서울에 자립형사립고를 2개 더 세우는 것도 교육계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115만평 전체를 자립형 초ㆍ중ㆍ고로 채우겠다는 구상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교육인적자원부도 당장 이날 자립형 사립학교 설립에 동의한 적이 없다며 서비스대책 총괄부처인 재정경제부에 항의했다. 설령 영어전용타운이 들어서도 ‘제주도에서 기본적인 공부를 시켜, 해외로 내보내 잘 적응시키겠다’ 형태의 조기유학이 많아지면 서비스 적자 해소에 별 도움이 안될 수 있다. 여유 있는 계층은 자녀의 국제적 안목을 키워주기 위해 계속해서 해외로의 유학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 더욱이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제주도 유학이라도 시킬 수 있는 계층은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계층간 교육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초ㆍ중ㆍ고의 공교육을 ‘서비스 산업’으로 간주하는 발상이나 국가의 공식교육과정과 배치되는 수업과정을 학력으로 인정한다는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유학이 급증하고 있는 게 현실인 이상 ‘제대로 된’ 영어타운만 만들 수 있다면 서비스적자 해소와 청소년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클 것이라는 반론도 팽팽하다. 국가경쟁력 관점에서 영어교육을 접근하는 경제계와 공교육 관점에서 접근하는 교육계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서비스업 강화 대책 내용은…
정부가 연극 오페라 전시회 등 공연관람으로 접대를 하는 기업들에게 세금 혜택을 확대해주는 방식으로 향후 2년간 기업 자금 4,000억~5,000억원 가량이 추가로 문화계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총 접대비 중 공연관람 접대비 비율이 5%를 넘으면 10%한도에서 손비로 인정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건전한 접대문화 정착과 문화예술업계 지원효과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해서다.
14일 정부가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하나로 발표한 문화접대비 추가 손비인정 제도는 한 기업이 전체 접대비 가운데 8%를 문화접대비로 사용했을 경우 기준비율인 5%를 추가한 3%에 대해 손금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기업접대비는 2004년 기준으로 5조4,000억원 가량이기 때문에 이 제도가 시행되면 최대 접대비 한도액의 10%에 해당하는 5,400억원 가량의 추가 손비인정 효과가 기업에 발생된다.
정부는 기업들이 5조4,000억원의 접대비 중 문화접대비 비중을 5%로 확대한다고 가정했을 때, 문화업계에 연간 2,000여 억원의 수요창출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내년 3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서비스업계에 투입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국책 금융기관들을 동원해 내년에는 올해보다 2,9000억원 늘어난 자금을 대출이나 보증 방식으로 서비스업계에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관광업 활성화를 위해서 외국인이 숙박하는 객실비에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해 객실요금 낮추는 제도도 재도입할 예정이다. 이전에 도입했다가 내국인과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2004년 폐지했던 제도다. 또 관광호텔에도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특히 CNN, BBC 등을 통한 관광광고 예산을 내년 200억원 가량 늘리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해외 환자를 유인하는 ‘의료 관광’ 활성화 방안도 추진된다. 관광 대행사(에이전시)가 국내 병원 등에 해외 환자를 소개ㆍ알선ㆍ유인하는 것을 허용할 방침이며, 경제자규구역 내에서는 병원이 치료와 휴양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법상 특례 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세금감면이나 전력요금 등에서 서비스업이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던 부분도 개선된다. 관광호텔 유원시설 골프장 스키장 유통단지 등의 용지에 부과되던 종합부동산세를 공시가 기준 4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대폭 높이고 최고 1.6%까지 내야 했던 종부세 세율도 0.8%로 단일화했다. 일단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또 서비스업은 전기요금을 제조업에 비해 많이 내고 있는 것도 2010년까지 같아지도록 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방안들을 포함해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159개의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문화접대비 손비인정이나 종부세 경감 등은 정부의 세입과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2~3년에 걸친 한시적 운용이라는 데 한계가 있다. 외국인 숙박객실에 대한 영세율 부과처럼 몇 년간 생색 내기용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폐지하는 등의 폐해가 반복될 수 있어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또 국책금융기관을 동원한 3조원대 금융지원 방안도 부실 운용될 경우 자칫 과거 벤처지원 때처럼 눈먼 돈 논란을 남기고 국고손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규제완화 추진 논란… 시민단체 등 반발
정부가 14일 발표한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 에 방송광고규제 합리화 방안이 포함됨에 따라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및 광고총량제 도입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비스산업>
지상파 방송사와 광고업계는 뉴미디어의 약진 등 매체환경의 변화 등을 들어 중간광고 허용 및 광고총량제 도입을 요구해왔다. 광고총량제는 프로그램별로 광고가 전체 방송시간의 100분의 10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현행 규정과 달리 전체 허용량만 법으로 정하고 방송사가 광고 유형과 시간 등을 자율 집행토록 하는 것으로, 황금시간대에 광고를 집중 배치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케이블TV 등 경쟁 매체들은 “지상파의 점유율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광고총량제 등을 허용하면 광고의 지상파 쏠림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도 광고가 범람하고 광고 유치를 위한 시청률 경쟁으로 프로그램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의식한 듯 종합대책에서 내년 상반기 중 방송광고정책 전반에 관한 로드맵을 발표한다는 방침 아래 구체적인 방안으로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의 중간광고 허용 ▦스포츠중계의 가상광고 허용 등만 제시하고, 중간광고 및 광고총량제 도입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방송위원회도 “내년 6월 이전에 로드맵을 확정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의도, 결정도 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의 일환으로 ‘규제 완화’를 들고 나온 만큼 지상파 방송사의 중간광고 등 허용 요구에 상당한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눈길 끄는 이색 서비스업 대책들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법으로 강제하기 어려운 이색적인 제안도 포함됐다.
우선 정부는 관광업계가 식ㆍ음료 봉사료(10%)를 자발적으로 폐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 관광업계가 관행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봉사료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숙박시설 이용부담을 높여 수요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정부는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폐지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자발적으로 폐지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는 현재 야드로 표시되고 있는 골프장 코스거리를 국내인이 알기 쉬운 ‘미터’로 변경해 줄 것도 업계에 요구했다.‘평’을 쓰지 말고 ‘㎡’를 쓰도록 하는 등의 계량단위 통일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정책하고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여름휴가 분산제 도입 검토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여름휴가가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서비스업계 활황 시즌이 일시적으로 끝나버리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물론 민간에 휴가분산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관공서부터 여름휴가를 분산해 다녀오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문성이 뛰어난 세탁소나 이용실 미용실은 향후 정부 인증마크를 갖게 된다. 난립하고 있는 개인서비스업종의 품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인증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지중해에서나 떠올려 볼 수 있는 크루즈를 3대 고부가가치 관광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주목되는 부분. 이를 위해 크루즈 선박에 대한 접안ㆍ정박료 50% 감면혜택을 2008년까지 추가로 연장하기로 했다. 프랑스 ‘칸’이나 싱가포르가 연상되는 국제회의 서비스업과, 해외 의료관광객 유치 등을 겨냥한 의료서비스업도 정부가 집중 육성하겠다는 3대 고부가가치 관광산업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진료외 업무 대행' 병원경영지원회사 생긴다
정부가 14일 내놓은 의료산업 발전방안의 골자는 ‘병원경영지원회사(MSOㆍ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의 활성화다.
MSO는 병원 고유의 업무인 진료를 제외한 모든 제반 업무를 대행해 주는 일종의 서비스회사다. 한 개의 MSO가 차려지면 여러 병원이 고객으로 참여해 회계 법률 인력관리 장비 구매 경영컨설팅 등 서비스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병원들은 본연의 업무인 진료에 충실할 수 있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 온다. 또한 하나의 MSO를 통해 고가의 의료장비와 병상을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중ㆍ소병원들의 경영 효율화를 돕고 나아가 MSO를 중심으로 한 자연스러운 인수ㆍ합병(M&A)도 진행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금지했던 법인병원(대학병원과 같은 비영리병원)의 MSO 설립 및 참여도 허용했다. 법인병원이 직접 MSO를 만들어 운영하면 여기서 생기는 수익으로 의료기관에 재투자하도록 해 대형병원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법인병원도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의료법 개정을 현재 추진 중이다. 법 개정은 이르면 내년 중에 이뤄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현수엽 보건의료서비스혁신팀장은 “MSO의 허용과 함께 여러 병원이 한 명의 의사를 공유하는 일종의 프리랜서의사제도도 도입된다” 며 “의료소비자에게는 경쟁력을 갖춘 의료인을 여러 병원에서 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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