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최근의 검찰 수사발표는 뜯어보면 볼수록 한편의 엉성한 미스터리 추리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법원과 수 차례 영장 공방을 벌이면서 검찰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등 흥행에도 나름대로 정성을 쏟았지만, '재정경제부의 한 국장이 사익을 챙길 목적으로 고교 동문들과 작당해 알짜 토종은행을 외국 투기자본에 헐값에 팔아치웠다'는 결말은 공허하고 썰렁하다.
증거나 증언보다 정황과 심증으로 채색된 검찰 발표문을 보면, 의사결정체계의 꼭대기에 있던 인물들에게 면죄부만 준 수사라는 의구심을 뿌리치기 힘든다.
▦ 재정경제부의 한 간부가 아는 기자들에게 전ㆍ현직 경제부총리와 장관들의 보신주의를 비판하는 이메일을 보낸 것도 이런 의구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당시 결재라인 상의 모든 사람이 무혐의라면 어떻게 (금융정책국장인) 변양호씨만 혐의가 있을 수 있는지, 공조직 운영시스템을 잘 아는 입장에서 허탈하고 우습다.
이제 당시 김진표ㆍ전윤철 부총리, 이정재 금감위원장으로부터 외환은행 매각 때의 판단배경에 대해 의미있는 말을 들었으면 한다." 그의 메일은 형식상 익명이었지만 발신자를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굳이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 당시 청와대 정책수석이었던 권오규 경제부총리마저 "법원 판단을 지켜보자"며 검찰의 불법매각 결론을 비켜가는 상황에서 그의 메일은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주장은 분명하다.
"(당시 부총리와 장관들이) '론스타에 매각한 것은 불가피했고 헐값매각이 아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하든지, 변양호씨에 속아 헐값에 팔았다면 감독직무를 방기한 책임을 함께 지라." 아울러 그는 검찰수사가 국민의 반(反) 투기자본 정서에 기댄 것이라고 비판하며 2003년 상황에선 론스타 매각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실무라인의 입장을 반복했다.
▦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화제 정도로 넘어갈 사안인데 난데없이 검찰이 끼어들어 이상하게 몰아가고 있다. 소위 '윗선'을 무혐의 처리하면서 변씨를 희생양 삼았다는 메일의 내용이 '국가기강과 관련된 문제'여서 글을 쓴 동기와 과정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수사대상 기관 공무원이 검찰이 마치 헛다리를 짚은 것처럼 언론에 유포한 혐의란다.
야심차게 내놓은 수사결과에 대한 반응이 신통찮던 차에 일개 공무원까지 대드니, 하긴 화도 날 법하다. 하지만 어떤 논리를 들이대더라도 과민반응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검찰이 조급증을 내는 이유가 더 궁금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