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원래'는 없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원래'는 없다

입력
2006.12.14 23:49
0 0

광화문이 원래의 제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철거된다. 지난 4일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이 있었다. 제 모습을 찾는다지만, 원래의 제 모습이 어떤 것일까? 1395년 처음 세워졌을 때의 모습일까, 아니면 1865년에 세워진 모습일까? 일제가 북문으로 옮겼던 모습일까?

● 누가 광화문의 원래 모습을 아는가

그리고 옛날의 제 모습이 어떠했는지 누가 알고 있는가? 현재의 현판을 떼내고 한자로 된 다른 현판을 달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 어떤 현판이 걸렸는지도 모르면서 새 현판을 다는 것을 제 모습 찾기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원래 콤플렉스'가 있는지 모른다. 음식점에 갈 때는 원조 음식점을 찾고, 농산물을 살 때도 원래 우리 것을 찾는다. 오리지널에 대한 존경심이 유난히 강하다. 그러나 원래 제 모습, 원래 우리 것 등은 환상이지 실재가 아니다.

꽤 오래 전, 전라도의 한 산사에서 며칠 머문 적이 있다. 그 산사는 퇴락한 고찰이었는데, 당시 주지 스님이 크게 중창하고 있던 중이었다. 천년 고찰을 기대하고 찾아온 참배객들은 실망했다.

원래 이 절이 이러지 않았는데, 영 못쓰게 되었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자 주지 스님이 한마디 했다. "원래 이 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주시오. 내가 꼭 그처럼 만들어 드리리다. 원래로 말하자면 이 절은 존재하지도 않았겠지요. 지금 새로 지은 저 법당도 천년이 지나면 고색창연할게요. 모든 것은 변할 뿐, 원래란 없는 것이요."

그 스님의 말씀대로 원래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무엇이건 한 자리에 오래 있다보면 그것이 원래가 된다. 광화문의 원래 제 모습이라는 생각도 환상이다. 나는 1975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광화문과 그 현판은 그대로이다. 누가 나에게 원래 광화문이 어떠했는가 묻는다면 지금의 모습을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광화문을 14.5m 옮긴다면 광화문은 세종로와는 다른 방향을 쳐다보게 된다. 일제가 광화문을 경복궁 북문으로 옮긴 후, 다시 우리 정부가 광화문을 제자리로 옮길 때 왜 5.6° 다르게 옮겼을까? 아마도 중앙청과 세종로의 방향과 조화를 고려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현재 중앙청은 없어졌다.

그러나 세종로는 그대로 있다. 건물을 세울 때 주변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굳이 제 모습을 찾자면서 기존의 도로와 어긋나게 세울 필요가 있을까? 무엇이 원래인지도 모르면서 더 이상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큰 공사를 해야만 할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현실과 유리된 허황된 이념 아닌지

광화문 이전을 포함한 권역 일대의 재정비 사업에 289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리고 공사기간 중에 심각한 교통체증이 예상된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교통체증만 걱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교통체증도 문제이지만, 말도 안되는 역사 바로 잡기 혹은 원래도 모르는 제 모습 찾기를 위해서 국력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원래라는 것은 현실과 유리된 허황된 이념과 상통하는 것 같다. 있지도 않은 원래를 위해서 다른 현실적 상황과 조건은 모두 엎드려 있어야 하는 사정은,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개혁만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우리 정치 현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상처를 지우기보다는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앙청 해체도 광화문 이전도 잘못된 역사의식의 발로인 것처럼 보인다.

이남호ㆍ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