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뀐 독한 방귀가 퍼지자 악당들은 모두 코를 움켜쥐고 달아났어요.”
실감나는 방귀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인형들이 뒤로 자빠지는 장면이 나오자 코흘리개 관객들이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입으로 방귀소리를 내기도 하고 도망치라고 악을 쓰기도 했다. 한참동안 소란이 벌어진 후 다시 얘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13일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청소년회관 1층 강당. 서울의 대표적인 산동네인 이 지역은 인형극 공연 ‘며느리 방귀 왕 방귀’가 진행되는 동안 한동안 들썩거렸다. 관객은 이 회관이 운영한 ‘온터 방과후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인근 학부모, 학생 등 100여명.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워 평소에 연극 한편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날 공연에 나선 사람들은 실버 인형극단 ‘보라’ 소속의 50~60대 할머니들. 홍금장(69) 김송금(61) 이금자(54) 정지영(54) 이영희(53) 등 5명이다. 이들은 구수한 목소리로 얘기를 들려주고, 공연중간에 노래도 부르고, 수화도 가르쳐 준다. 때론 악당이 되기도 하고, 10~20대가 같은 꾀꼬리 같은 아가씨 목소리로 변하는 게 놀랍기만 하다.
실버극단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2003년 8월. 당시 관악여성인력개발센터가 일자리 창출로 경제력도 갖고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해 무료 교육인 ‘실버 인형극 지도사’ 과정에 응모했던 노인들이다.
1기를 시작으로 올해 5기까지 30여명을 배출한 이 교육과정은 기수마다 처음에는 25여명이 모여 강의를 받지만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5, 6명 정도. 이들은 주말을 빼고 한 주 5일씩 하루 3시간 교육을 통해 6개월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은 동화구연, 인형극을 배우고 강의가 끝난 뒤에는 인형극에 쓸 소품을 만드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 마치면 동화, 인형극 지도사 자격증을 갖게 된다. 이들은 어린이들과 노인들이 좋아하는 동화, 고전을 선정하고 인형극에 맞게 각색한다.
이렇게 탄생된 작품들이 ‘개구리들의 외출’ ‘피터와 늑대’ ‘홍도야 울지마라’ 등 10여편. 실버 인형극단 보라가 지금까지 한 공연은 100여차례에 이른다.
전문 공연자가 아닌 만큼 공연에 필요한 소품, 인형, 무대장치 등 모든 것은 단원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들은 공연제작, 연출, 공연자 등 1인 5역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홈플러스, 이마트 등 백화점에서 초청공연을 받게 되면 10만~30만원을 받지만 고아원, 장애인시설, 노인보육시설 등에는 무료로 공연한다. 이 때문에 간혹 용돈벌이도 하지만 대부분 쌈짓돈을 내놓는 경우가 더 많다.
2년전 딸의 권고로 단원이 됐던 홍씨는 지난해 가을 전국동화구연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받기도 한 베테랑이다. 그는 “당초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했으나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공연하는 게 더 보람이 있었다”며 “일을 하다보니 건강도 좋아져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관악여성인력개발센터 오효정 간사는 “나이 드신 분들이 봉사하는 것을 보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문의 (02)886-9523~5.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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