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휴가였다. 우린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공수도(가라데) 선수로 출전했던 레바논의 알리 유네스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레바논은 지난 여름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전쟁을 겪었고, 최근엔 시아파 무장 단체인 헤즈볼라가 반정부 투쟁을 벌여 정국이 어수선한 상태다. 그 와중에도 레바논은 이번 대회에 139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오로지 메달 획득을 위해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호사’를 누린 반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목숨을 내건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아시아의 분쟁 지역에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육상 농구 배구 태권도 등 12개 종목 83명의 엔트리를 조직위에 제출했지만 선수들 중 상당수가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스라엘과의 분쟁으로 인해 가자 지구 부근 국경이 폐쇄돼 선수들이 출국하지 못했던 것.
이라크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대회직전 축구 대표팀의 코치였던 아크람 아메드 살만은 살해 위협을 받아 코치직을 그만뒀고, 수니파였던 레슬링 대표팀 코치는 바그다드의 시아파 지역에서 목숨을 잃었다. 축구 대표팀 출신의 국제 심판이었던 가님 구다예르도 지난 9월 납치된 이후 소식이 끊긴 상태다. 이라크 축구 대표팀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을 꺾고 결승에 진출해 아시아 축구팬들을 감동시켰다.
그 외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동티모르 등 분쟁 지역에서 날아온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덕분에 잠시나마 전쟁, 테러, 자살폭탄 등 끔찍한 단어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팔레스타인의 공수도 선수인 모하마드 알 카티브는 “이곳에 와 경기를 벌일 수 있어 기뻤지만 돌아갈 일이 막막하다.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고 걱정했다. 레바논의 유네스도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 지 항상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 폐막이 다가오면서 분쟁 지역의 선수들이 누렸던 잠깐 동안의 ‘달콤한 휴가’도 끝나 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열리는 폐회식에선 “2010년 다음 대회 장소인 중국 광저우에서 만나자”는 구호가 빠지지 않겠지만 분쟁 지역 선수들은 2010년의 만남을 쉽게 약속할 수 없는 처지다. 앞으로 4년 동안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하(카타르)=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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