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걱정을 모르던 일본 주재원들까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고 있어요."
신흥 주상복합촌으로 부상한 서울 광화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최근 알짜배기 손님인 일본인 고객을 여러 명을 놓쳤다며 푸념했다.
그는 "한ㆍ일 부동산 가격이 역전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쿄 집값이 서울보다 비쌌던 덕에 일본 주재원들은 인심이 넉넉한 편이었다"며 "그러나 올 들어서는 껑충 뛰어오른 월세 가격을 제시하면 손사래를 치며 마포 등 부도심으로 발길을 돌리는 일본인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 지역의 월세는 일본인 임원급이 즐겨 찾는 50평대의 경우 월400만원을 훌쩍 넘고, 전세도 6억원을 상회하고 있다.
재력을 뽐내던 일본인 주재원들이 돈에 쪼들려 비싼 도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악재의 십자포화를 맞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겁나게 오른데다 원ㆍ엔 환율이 뚝 떨어지면서 일본 돈 값이 쪼그라든 것이다. 일본인의 '굴욕'은 작은 사례에 불과하지만 한국경제가 직면한 중대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생각된다.
당장 부동산 시장은 11ㆍ15 부동산대책 이후 급등세가 진정됐다고 하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내년 하반기까지 신통한 물량이 많지 않는데다 대통령 선거 분위기에 편승해 노무현 정부가 억지스럽게 만들어놓은 각종 부동산 가격 견제장치가 이완되면서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란 부동산 불패 심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초강력 대책을 쏟아놓기에는 부담스럽다. 부동산 가격이 거품 터지듯 폭락하면 가계와 금융권이 연쇄적으로 망가지고, 잠재성장률조차 제대로 못 챙겨먹을 정도로 비실비실한 한국경제가 주저앉는 복합불황이 우려된다.
환율 역시 날카로운 양면의 칼날이다. 특히 엔화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올 들어 달러화에 대해 원화는 몸값이 9.9%, 유로화가 12% 더 비싸진(절상ㆍ환율하락) 반면 엔화는 2.3% 절상됐을 뿐이다.
이 바람에 한ㆍ일 물가가 역전돼 국내에선 일본 고급차인 렉서스가 지난 달 판매신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BC카드로 일본에서 결제한 10월 카드금액이 월간최대규모를 기록했다. 반면 일본 관광객들은 지갑을 꽁꽁 닫고, 대일수출 업체들은 타격을 입고 있다.
엔화의 역주행은 일본의 엽기적인 저금리 때문이다. 저금리인 엔화를 팔고 금리가 더 높은 달러화나 원화를 사서 이익을 얻는 엔 캐리트레이드가 성행하고 있다. 엔화대출을 통한 부동산 매입이 성행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비정상적인 엔저가 국내 집값을 끌어올리는 보이지 않은 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엔저가 해소되려면 일본에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아베 정부가 성장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일본은행은 한국과 달리 정부에 꽉 잡혀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환율의 국제경찰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도 밀월관계 때문인지 일본에 딱지를 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엔저 역시 내년 한국경제를 계속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설명 금리를 올려도 큰 피해가 나기 십상이다. 올해 3월아이슬란드와 터키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면서 환율이 급격하게 올라(절하) 큰 곤욕을 치렀다.
2007년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 보다 10년전인 87년에는 블랙먼데이가 세계를 흔들었다. 주기설은 믿을 바가 못되지만 돌아가는 판세가 심상치 않기에 신경이 쓰인다. 유비무환이란 말을 되새겨볼 때다.
김경철 경제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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