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코, 울지 말아라!”
엉엉 울던 딸은 아버지의 한마디에 울음을 뚝 그쳤다. 이어 점퍼 상의를 벗고 갑자기 출구 복도에서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실력이 아니라 정신력에서 졌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이 신기한 광경을 보고 취재진과 관중이 몰려들자 보다 못한 어머니가 “교코, 그만해”라고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정신을 재무장하고 있으니 조용히 있으라”고 소리쳤다.
# 은메달따자 자진해서 푸시업
2006 도하아시안게임 여자레슬링 72㎏급 결승이 벌어진 12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아스파이어홀에서 벌어진 희대의 해프닝이었다. 딸은 일본 여자레슬링의 간판스타 하마구치 교코(28), 아버지는 ‘Animal(동물)’이란 별명으로 활약했던 프로레슬러 출신 하마구치 헤이고(59). 교코는 결승에서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 왕슈(중국)에게 1-3으로 졌다.
교코는 지난 10월 세계선수권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출전을 포기하라는 주위의 충고를 물리친 채 출전을 강행한 교코는 은메달을 목에 건 채 서럽게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번갈아 하던 교코에게 아버지는 “힘내라, 일어설 수 있다”고 소리쳤다. 한참 뒤 딸이 아버지를 꼭 껴안자 아버지는 “오늘의 패배를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꼭 되갚자”고 격려했다.
사무라이 정신(武士道)을 숭상하는 일본에서는 13일 하마구치 부녀의 이야기가 대서특필됐다.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한 딸은 “은메달은 지난 4월 돌아가신 할머니께 바친다”고 훌쩍였고, 아버지는 “잘 싸웠다”며 딸을 다독거렸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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