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벡호’가 또 다시 좌초했다. 핌 베어벡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던 ‘세계축구와의 격차를 좁히겠다’는 목표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 베어벡호 6개월간 해결책 없이 약체상대 졸전 거듭
축구 대표팀은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이라크에게 0-1로 패하며 도하 아시안게임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라크가 잘해서 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해서 자초한 패배라는 점이 더욱 뼈아프다. 세계축구의 흐름과는 거리가 먼 축구 변방을 상대로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만을 재확인한 셈이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 병폐는 ‘골 결정력 부재’와 ‘역습에 의한 골 허용’으로 요약된다. ‘베어벡호’는 이라크전에서도 이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며 무너졌다.
걱정스러운 것은 ‘베어벡호’가 출범한 후 6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두 가지 문제점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로 거듭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근심스럽다. 베어벡 감독이 취임한 후 한국 축구 대표팀의 상대팀 중 이른바 ‘세계적 수준의 팀’은 10월 친선경기를 치렀던 가나와 아시안컵 조별 예선에서 맞붙었던 이란 정도다. 나머지는 ‘축구 변방’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약체들이다. 그러나 ‘베어벡호’는 이런 약체들도 제대로 요리하고 있지 못하다.
약체와의 졸전이 거듭된다는 것은 지도자의 전술 채택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라크전도 마찬가지다. 전반전에 반복됐던 답답한 공격 방식은 후반에도 이어졌다. 이른바 ‘뻥축구’다. 측면에서 문전으로 크로스를 우겨 넣어 득점을 노렸을 뿐 세밀한 부분 전술에 의한 짜임새 있는 공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베어벡 감독의 위기 대처 능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후반 중반에 접어 들어서야 수비수 김진규(이와타) 대신 김두현(성남),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제니트) 대신 최성국(울산)을 투입해 공격라인을 강화했지만 경기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상대가 선제골을 넣은 후 ‘잠그는 축구’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좀 더 빨리 공격적인 전술 변화를 주지 않은 것이 아쉽다.
베어벡 감독은 이라크전에서 이호와 오장은(대구)을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박주영(서울)을 처진 스트라이커로 배치해 중앙 미드필드진을 구성했다. 단조로운 측면 공격이 반복된 것은 중원에서 ‘플레이메이커’ 노릇을 제대로 해줄 선수가 없었던 탓도 크다.
세트 피스에서의 전술 부재도 못내 아쉽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 10월 ‘베어벡호 3기’ 훈련 당시 “현대 축구에서 절반 가까운 득점이 세트 피스에서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집중적으로 반복 훈련을 했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적지않은 시간을 세트 피스 훈련에 할애했지만 이라크전에서 17번이나 얻은 코너킥 기회를 모두 무산시켰다. 한국은 14일 오후 11시30분 이란과 동메달을 놓고 다툰다.
김정민 기자 goavs@h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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