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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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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

입력
2006.12.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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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에는 998종(중복 출품 도서, 인터넷 미신청 도서 포함)의 책이 출품됐다. 부문별로는 학술 저술부문 160종, 교양 저술부문 168종, 번역부문 228종, 편집부문 182종, 어린이ㆍ청소년부문 259종이었다. 이는 지난 해에 비해 240종 가량 늘어난 것으로, 책들은 그만큼 치열해진 예심 경쟁을 치러야 했다.

지난 9일 한국일보 11층 인터뷰실에서 열린 예심에서 53종의 책(또는 전집)이 본상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부문별로는 학술 저술 12종, 교양 저술 12종, 편집 7종, 번역 11종, 어린이ㆍ청소년 11종이다.

후보작을 낸 출판사는 모두 34곳이다. 몇몇 출판사의 책이 2~4종씩 후보작에 드는 드문 영예를 안았지만,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출판사의 책들이 고르게 본심에 올랐다.

올해 예심은 출판평론가 이건우씨, 이동철 용인대(철학) 교수,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바이오시스템학) 교수, 출판평론가 표정훈씨, 허병두 책따세 대표(교사)가 맡았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학술부문 후보작

한국 근현대사, 특히 최근세사에 대한 저술이 늘었다. 4,5년 전에는 조선사, 2,3년 전에는 일제시대 연구서가 주류였다면 광복 60주년을 넘어서면서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 개발독재 등 최근세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저자들의 연령대가 젊어졌다는 점, 최근 이념 논쟁의 사회적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것’을 데이터화하려는 전문화한 시도도 돋보였다(<딱정벌레> <한국의 배> 등). 이는 한편으로, 출판 시장의 위축과 함께 일찍이 자연과학 분야의 학술 출판이 그랬듯이, 인문ㆍ사회 부문의 학술 영역도 점차 출판의 주된 흐름과 괴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딱정벌레 : 박해철 지음

시대에 대한 여러 규정이 있겠지만, 저자는 현세를 “딱정벌레의 시대”라 말한다. 지구상에 알려진 모든 생물종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딱정벌레라니 수긍할 만도 하다. 전문 연구자가 생애의 연구성과를 담아 저술한 이 책은 ‘자연의 거대한 영웅 딱정벌레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딱정벌레의 생태, 역사, 인간과의 관계 등 딱정벌레에 대한 “인간이 파악한 모든” 정보와 지식을 전한다. 스케일이나 저술체계, 정보의 깊이 면에서 세계 여느 관련서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한국 곤충학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다른세상 발행.

●맥루언을 읽는다 : 김균·정연교 지음

1960년대라는 문화 격동기에 21세기 첨단 미디어의 시대를 앞서 사유했던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 맥루언. 이 책은 그의 텍스트에서 우리 사회가 취할 것들을 다시 살펴본 책이다. 저자들은 맥루언의 화두들- 몸이 인식의 매개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등이 과연 옳은지, 어떤 의의가 있는지 설명하고, 철학적 함의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또 ‘핫미디어’ ‘쿨미디어’로 나눈 맥루언의 매체 유형구분, 구어시대-필사시대-인쇄시대-전자시대로 구분한 그의 사관의 의미 등을 살펴본다. 궁리 발행.

●실학시대의 사상과 문학 : 이동환 지음

한문학자인 저자는 실학시대라는 전환기의 사상사를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에게 실학시대는, 모화주의의 태내에서 그 사상의 잔영을 품은 채 새로운 사상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던 시대였다. 가령 연암의 자연과학적이고 가치중립적 우주관이 주자학의 세계관과 대결하지만, 그가 완전한 ‘반(反) 주자주의’의 길을 걷지는 않았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문학사와 사상사의 문제를 결합시키며 실학시대 다양한 지성의 맥락을 12편의 논문을 통해 짚어내고 있다. 지식산업사 발행.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 강영안 지음

서양의 자아중심적 철학 전통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윤리학을 제1 철학으로 내세운, 독특한 타자성의 철학자이자, 현대 철학사에서 “가장 전위적이고 대담한 입장을 확립한 철학자”로 꼽히는 레비나스. 이 책은 그의 생애와 철학적 개념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안내서이자 해설서다. <시간과 타자> 를 국내 초역한 저자는, ‘주체’와 ‘타자와의 만남’ ‘책임’ ‘고통’ 등 레비나스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들을 철학적 맥락 위에서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그 의의를 정리한다. 문학과지성사 발행.

●플라톤- 서양철학의 기원과 토대 : 남경희 지음

“서양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그는 서양철학의 토대를 다진 철학자다. 하지만 이 거대한 철학의 대륙을 현대철학적 사유와의 연관 속에서 입체적으로 고찰한 연구서는 드물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플라톤 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모노그래프”다. 책은 그의 철학의 핵심 주제인 윤리학과 존재론(형이상학), 인식론, 정치철학, 우주론 등을 입체적으로 검토하며 서구의 존재론과 인식론의 기본틀, 진리탐구 방법론과의 연계를 조망한다. 아카넷 발행.

●한국 고대극장의 역사 : 신선희 지음

‘우리에게 과연 극장사가 존재하는가.’ 오랜 무대 경험과 교단 생활을 해왔고, 현재 국립극장 극장장인 저자가 스스로 제기한 이 의문에 답한 책이다. 저자는 고대 제의에서부터 삼국시대 의례악, 고려시대의 연등회ㆍ팔관회, 조선시대 궁중의례를 관통하는 제의성과 축제성을 공간적 사유를 통해 재현한다. 또 비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동ㆍ서양 극장을 비교하기도 한다. 사료 조사와 고증, 저자 자신의 연극적 상상력을 토대로 시대별로 8컷의 극장공간 유추도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열화당 발행.

●한국의 배 : 김효철 외 지음

세계 제1의 조선 강국인 한국의 조선 역사를 집대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이렇다 할 조선사(造船史)가 없었다. 이 책은 국내 최초의 배(船) 도감으로, 유조선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 상업선박 뿐 아니라 유ㆍ무인 잠수? 해군 함정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우리나라 최근세사 대표 선박들의 정보를 망라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읽힐 책은 아니지만 국내ㆍ외 조선 학계와 업계에서는 오랫동안 갈망해 온 책이다. 가치 있는 자료를 집성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았다. 지성사 발행.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 산업화, 민주화, 시민사회 : 권태준 지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한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근원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근원적이라 함은, 기왕의 여러 서구 이론틀로 바라본 한국 근ㆍ현대사의 한계를 이론사적 맥락에서 비판하고, 극복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한국 자본주의는 서구 자본주의 성립 이전의 중상주의를 20세기 세계시장 논리와 타협한 ‘의제(擬制) 자본주의’라 규정한다. 개발론, 근대화론, 종속이론 등 우리 사회를 규정한 다양한 개념ㆍ이론들의 논쟁사를 조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남출판 발행.

●한국의 정치변동 : 김영명 지음

한국 정치를 우리의 독창적인 개념과 분석틀로 고찰한 학술서는 뜻밖에도 드물다. 정치학자인 저자가 지난 20년 남짓 동안 생각하고 연구해온 바를 저자 나름의 분석틀을 통해 제시한 이 책은, 그 척박한 풍토에서 나온 한국 정치학의 성취이자 신선한 자극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한국의 정치변동을 분단과 산업화, 힘겨룸이라는 정치 보편과 특수의 요인들을 통해 고찰한다. 이 요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정치를 변화시켰고, 거꾸로 변화된 정치가 세 요인에 작용했는지 살피고 있다. 을유문화사 발행.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 정병준 지음.

역사학자인 저자는 한국전쟁을 설명하면서 ‘형성’이라는 용어를 동원한다. 미소와 남북, 좌우의 세 층위의 갈등이 한반도 내에서 어떻게 형성됐고 어떤 유기체적 과정을 통해 전쟁을 형성했는지, 다시 말해 한국전쟁의 “구조적이며 입체적인 주조과정”을 고찰한다. 이 책은 북한 노획문서, 특히 1990년대 공개된 신노획문서를 본격적으로 활용해 저술된 첫 한국전쟁 연구서다. 저자는 미국과 구소련, 북한 등 3개국 자료를 치밀하게 교차ㆍ분석해 사실의 객관적인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돌베개 발행.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 백낙청 지음

1980년대 말 이래 <분단체제론> 을 통해 한반도 분단 현실을 궁구해 온 저자가, 교양과 사유, 현실에 대한 성찰을 결합시켜 쓴 우리 사회 진단서이자 미래 지침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반도식 통일은 이미 진행 중이며 그 일차적 완성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는 저자 특유의 통일 개념- 상당기간에 걸친 지속적 과정으로서의 통일- 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6ㆍ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 대표인 저자는 6ㆍ15 개혁의 의미도 부각하고 있다. 창비 발행.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 박지향 등 지음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민족주의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후 축적된 학계의 실증적 연구 성과를 반영해 해방전후사를 ‘재인식’한다는 취지로 출간된 책이다.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일상사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30편의 글과 편집위원 대담이 2권으로 나뉘어 출간됐다. 친일과 민족주의, 일제 잔재의 단절과 연속, 해방정국과 대미관계 등 논쟁적인 내용들이 다수 담겨 있어, 이후 한국 근현대사 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왔다는 점도 심사에서 반영됐다. 책세상 발행.

정리=최윤필기자

교양 부문 후보작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ㆍ경제사상’ ‘미래교양사전’ ‘아름다운 우리몸사전’처럼 특정 분야의 지식을 종합적으로 모은 사전류 서적이 많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양적 차원에서 알아야 할 특정 분야의 지식 일반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커진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관해기 : 주강현 지음

육지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바다를 중심에 놓고, 바다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우리 민속사다. 제주의 작고 아름다운 섬 비양도, 은빛 멸치 떼의 향연이 펼쳐지는 기장, 원시어법 죽방렴이 살아있는 삼천포 등 한반도에 면한 세 바다의 생활, 민속, 생태, 역사를 기행 형식으로 소개한 대중적 인문서이다. 서해 격렬비열도에서는 대륙과의 문명 교류의 흔적을 찾고 전설의 섬 이어도에서는 미래 해양 과학의 희망을 발견하며, 울릉도 오징어와 대관령 황태 맛을 예찬하다가 동해 심해저의 무궁무진한 미래가치를 역설하기도 한다. 웅진씽크빅 발행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ㆍ경제사상 : 김만권 등 지음

그림을 곁들여 정치사상과 경제사상의 흐름과 중요 개념 및 용어를 설명한다. 정치사상편은 마키아벨리에서 로티에 이르는 근대 국가 이후의 주요 사상을 소개한다. 저자는 정치사상이 이 사회가 정당한지를 묻고 답하는 작업이며, 정치체제의 오류를 고쳐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경제사상편은, 경제학이 유용하기는 해도 낯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를 위한 용어 해설이다. 하지만 단순한 나열식 설명이 아니라 그 용어가 탄생한 경제학적 역사와 배경을 소개함으로써 경제사상의 기본 맥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개마고원 발행.

●디아스포라 기행 : 서경식 지음

재일조선인 2세인 저자가 런던, 잘츠부르크 등을 여행하면서 쓴 예술기행서. 여행 길에서 만난 오페라 회화 영상물 문학작품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읽어나간다. 디아스포라는 아프리카 출신 노예, 팔레스타인 난민 등 자기가 속해있던 공동체를 떠나도록 강요받은 사람이다. 시대와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이끌어내면서 인간은 어떤 종류의 지배와 차별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염원을 책 전체에서 드러낸다. 그렇게 되려면 소수자의 진정한 목소리를 경청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돌베개 발행.

●내가 본 함석헌 : 김용준 지음

한국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함석헌의 생애를 다룬 전기다. 1949년 22세 때 함석헌을 처음 만난 저자는 1989년 그가 타계할 때까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석헌과 함께 했다. 전공인 유기화학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함석헌에게서 배웠다고 말하는 사상적 동지이자 완벽한 증인 가운데 한 명이다. 책은 함석헌의 소박한 일상과 그 사상의 근간 및 형성과정, 씨알(민중)을 향한 고난의 길을 선택한 과정을 전달한다. 자아에 대한 내적 성찰을 통해 사회 변혁을 이루고자 했던 함석헌의 외침을 잘 담고 있다. 아카넷 발행.

●미래교양사전 : 이인식 지음

가상인간, 생물강철, 뇌지문 감식 등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과학적 키워드 369개를 뽑았다. 과학기술을 다룬 책이지만 과학기술 경제 문화 환경 군사 섹슈얼리티 초자연현상 의학 등 21세기 전반부 인류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이론, 아이디어, 지식을 백과사전처럼 가나다 순으로 집약했다. 미래에는 현재의 고정 관념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가상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그런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저자는 책 머리에 적었다. 갤리온 발행.

●미술과 범죄 : 문국진 지음

법의학자인 저자가 성서와 신화 속에 나오는 범죄를 그린 그림과, 그 그림 속에 은밀하게 감춰진 인간의 무의식적 범죄 충동을 추적했다. 저자는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인간은 누구나 무의식 속에 범죄 충동을 갖고 있으며 그 같은 원초적 범죄 심리가 상상력의 프리즘을 통과하면 명화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살인, 참수, 독살 등 흉포한 범죄 현장을 그린 그림들이 책에 가득하다. 저자는 아찔한 범죄의 순간을 포착한 명화들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야누스의 양면적인 본성을 경고한다고 말한다. 위즈덤하우스 발행.

●아름다운 우리 몸 사전 : 최현석 지음

자연계에서 가장 복잡하게 진화한 생명체인 인간 종의 경이롭고도 신비로운 생리 현상의 메커니즘을 소개한다. 인체 시스템의 종합 통제실인 뇌에서 시작해 신경계 감각계 피부계 호흡계 심장혈관계 소화계 내분비계 생식기계 근골격계 등을 거쳐 힘의 원천인 근육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에 관한 교양적 지식을 담고 있다. 인체 운영의 방식과 원리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의 분화가 인간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링若쨉?이 책은 그것을 극복하고 인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성사 발행.

●야만시대의 기록 : 박원순 지음

사회운동가 박원순 변호사가 신문, 잡지, 단행본, 논문, 판결문 등을 망라해 국내외의 다양한 고문 사례를 정리했다. 고문의 성격과 구조, 다양한 고문 방법과 관련 이론 등을 고찰하고 한국에서 자행된 고문의 양상과 피해자의 고통 및 가해자의 현실, 고문에 관한 법제와 고문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 및 인권단체의 활동, 최근의 국제 고문 사례 등을 기록했다. 아울러 일제가 식민지배의 수단으로 이용한 고문의 실상과 고문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추적하고 정권에 의한 간첩조작사건과 고문 사례도 소개한다. 역사비평사 발행.

●역사용어 바로 쓰기 :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역사 용어는 뜻이 비슷해 보여도 의미에선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역사적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와 해석 방식의 차이도 반영돼 있다. 계간지 <역사비평> 연재 글을 묶은 것으로 부지불식간에 잘못 쓰이거나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역사 용어를 바로 잡아보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친일인가 협력인가, 해방인가 광복인가, 의사인가 열사인가 등 헷갈리는 용어를 설명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세 나라만 공존한 시대가 98년 밖에 되지 않으므로 삼국시대 대신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비평사 발행.

●연암을 읽는다 : 박희병 지음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실학자인 연암의 산문은 미학적, 다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그 뜻을 정확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해독을 하더라도 우리 말로 쉽고 정확하게 옮기는 것은 지적 능력과 축적된 공부가 바탕이 돼야 한다.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5년 전부터 대학원생들과 함께 연암 산문을 강독하고 있는데 이 모임을 통해 한글 세대가 읽을 수 있는 우리말 표현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책은 연암의 문장을 소개한 뒤 거기에 해설과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연암의 생각이 무엇이고 고민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돌베개 발행.

●21세기의 동양철학 : 박원재 등 지음

동양 철학은 이론과 인식이 아니라 실천과 수양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서양 철학과 다르다. 이 같은 동양 철학이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사를 줄 것이라는 기대 하에 동양 철학의 기본 개념을 하나씩 정리한 책이다. 21세기 한국의 관점과 입장에서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과 쟁점, 분야, 용어 등을 살핀다. 어원, 최초의 출전, 대표적 용례, 시대별 의미의 전개, 유파별ㆍ학파별 의미의 차이, 오늘날 중시되는 맥락 등을 소개한다. 한국의 동양철학 혹은 동양학의 연구현황도 반영했다. 을유문화사 발행.

●철학, 삶을 만나다 : 강신주 지음

철학은 삶에 대한 성찰이자 기록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철학은 어두침침한 도서관에 박혀있다는 게 저자의 문제 의식이다. 그는 누가 철학과 삶을 갈라 놓은 것일까 고민한 뒤 철학과 삶이 만나는 오작교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책을 썼다. 편한 글이지만 주제는 가볍지 않다.

철학 그 자체, 사랑과 가족 이데올로기,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마음의 고통, 타인을 보는 우리의 태도 등을 다루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 살아가면서 직면할 불편함, 당혹감을 미리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학사 발행.

정리=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번역 부문 후보작

번역 부문에서는 모두 11종이 예심을 통과했다. 철학서, 역사서, 평전, 과학서 그리고 한시(漢詩)까지 종전에 비해 장르가 다양해졌다. 몇 년씩 시간을 투입한 묵직한 번역물이 많아 본심에서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이들 서적은 관련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이다. 단순 번역에 머무르지 않고 원서에는 없는 혹은 부실한 주석이나 해설, 부록 등을 추가하는 등 저술 못지 않은 공력을 들인 책이 많다.

또 다른 교양(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김재영 등 옮김

과학사상사 교수인 저자가 기술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소개한 자연과학적 지식을 모았다. 근대자연과학이 어떻게 생겨났고, 물질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태초의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고, 진화 이론이 지구상의 생명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등을 체계적이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피타고라스와 코페르니쿠스에서 칸트와 낭만주의 철학의 연관 관계를 보여주고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와 릴케의 시를 연결하면서 과학이란 끊임없이 반박되고 수정되면서 반증되는 역동적인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고 역설한다. 이레 발행.

비트겐슈타인선집(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철학에 미친 큰 영향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나 연구가 쉽지 않은 난해한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단편적, 부분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정교한 논리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이유로 선집을 구상했다. <논리-철학수고> <소품집> <철학적 탐구> <확실성에 관하여> 등 모두 일곱 권으로 구성된 이 선집에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작이 모여있다. 상세한 주석과 부록을 첨가해 최근의 국제적인 비트겐슈타인 연구 동향을 반영했다. 책세상 발행.

사생활의 역사(필립 아리에스 등 책임편집)

지난 2,000여년의 인류 역사를 개인, 내면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살폈다. 흔히 거대 담론을 앞세운 나머지 개인의 역사를 등한시하기 쉬운데 이 책은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역사책이지만 시대에 관한 거대한 박물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각 시대의 남과 여, 그들의 사고와 감정, 삶의 태도와 관습, 코드 체계 등을 관찰하고 양피지 문헌, 비단옷, 문학 등 각종 예술작품과 저택의 돌에 새겨진 사적인 것의 이미지를 추적한다. 다양한 영역과 주제, 접근법 등을 통해 하나의 종합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새물결 발행.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자크 바전 지음) 이희재 옮김

서양문화사 500년을 해방, 개인주의, 원시주의, 추상, 분석, 세속주의와 같은 키워드로 읽어낸 독특한 역사서다. 시대마다 달리 표현되는 예술 속의 인간관을 들여다보고 서양 문화의 주요 원동력도 살핀다. 저자는 탁상공론에 빠지기 쉬운 이론보다는 인간이 실존적으로 추구하는 열망을 통해 역사에 접근해야 한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난 500년 동안 서양은 그때까지 찾아볼 수 없던 제도와 사상을 선보였다는 점을 드러내 보인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무명 인사도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 인사가 될 수 있다. 민음사 발행.

순수이성비판(임마누엘 칸트 지음)

유한한 인식의 한계 안에서도 위대함을 꿈꾼 계몽주의적 인간상을 그린 <순수이성비판> 은 칸트 철학의 핵심을 담은 책이다. 칸트 철학을 이해하려면 이 책을 접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한국어로도 여러 번 번역된 바 있다. 이번 번역본은 서울대 철학과 교수인 역자가 20년 이상 해온 주해 연구와 강독, 지금까지 이뤄진 국내외 연구의 성과와 번역어 표준화 작업 결과를 바탕으로 출판됐다. 130여쪽의 방대한 해제와 찾아보기가 붙어있다. 칸트 원전 1, 2판을 표준으로 최근 교열 편집된 티멘만판 등을 참조했다. 아카넷 발행.

아케이드 프로젝트(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19세기의 수도’ 파리를 대상으로 자본주의 성격 분석을 시도한다. 아케이드, 패션, 권태, 박람회, 광고, 회화, 신문, 조명, 철도, 증권거래소 등 자본주의 탄생기의 파리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등장기의 사회ㆍ문화 현상을 탐색한다. 파리의 아케이드가 갑자기 폐허가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본주의가 꿈과 환상을 심어주다가 한순간 그것을 쓰레기 혹은 물거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원서에는 없는 방대한 역주와 인물 설명, 책의 탄생 과정 전체를 상세히 알려주는 다양한 부록이 실려 있다. 새물결 발행

안녕, 아인슈타인(위르겐 네페 지음) 염정용 등 옮김

상대성이론 발표 100주년, 아인슈타인 타계 50주년을 기념해 2005년 독일에서 출판한 것을 번역한 아인슈타인 평전이다. 아인슈타인은 관습에 초월하고 정치적으로 생각하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즉흥적으로 시를 짓기도 했다. 인권과 평화를 옹호하는 투사였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성과 자식에 대해서는 냉정했다. 그러면서도 상대성 이론을 만든 최고의 물리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 책은 인간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두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사회평론 발행.

완역 두보율시(두보 지음)

두보의 율시 777수를 운자에 따라 분류ㆍ편집한 <두율분운> (杜律分韻)을 번역한 것이다. 두보는 중국 고대 시문학사의 최고봉으로, 타고난 재주를 바탕으로 호방하고 즉흥적인 창작을 즐기는 이백과 달리, 치밀한 구성과 절제된 언어, 세련된 형식을 취했다. 광범위한 독서를 통한 공부와 각고의 노력 및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창작했기 때문에 엄격한 제약이 따르는 율시에서 특히 재능을 드러냈다. 원문 번역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 이해에 필요한 해설과 주석을 추가했다. 기존 주석서의 다양한 견해를 검토하고 주요 이설을 함께 수록했다. 명문당 발행.

의사소통행위이론(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장춘익 옮김

세계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저자의 대표작으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개념을 제시한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언어 및 행위능력이 있는 주체들이 어떤 것에 관해 서로 이해를 도모할 때 성립하는 합리성이다. 하버마스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권력, 화폐와 같은 비언어적 매체에 의해 행위조정이 이루어지는 ‘체계’와, 사회화나 사회통합처럼 여전히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행위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생활세계’로 구분하는 2단계 사회이론을 제안한 뒤 이에 기초해 현대사회의 병리현상과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내놓는다. 나남출판 발행.

전략의 귀재들, 곤충(토머스 아이스너 지음)

동물행동학과 생태학의 권위자인 저자가 반세기 동안 우루과이, 호주, 파나마, 유럽, 북아메리카를 넘나들며 관찰하고 실험하여 발견한 곤충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생존전략을 보여주는 책이다. 곤충은 애벌레로 태어나 날개가 달린 성충이 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종이 변태과정을 거치며 체내 수정을 하기 때문에 짝짓기를 할 때 굳이 물을 찾을 필요가 없으며, 단단한 외골격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탈수 현상을 막아 육지에서 번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삼인 발행.

칸의 후예들(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몽골제국은 13, 14세기 세계 역사의 중심이었다. 따라서 당시 세계의 실체에 접근하려면 다양한 언어와 관점에서 기록된 자료들에 기반을 두고 종합적 연구를 해야 한다. <부족지> <칭기스칸기> 와 더불어 라시드 앗딘의 <집사> 중 <몽골사> 의 한 부분을 이루는 책으로 몽골이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해 그 최종적인 완성을 보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국의 모든 영역 즉 중국, 중앙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등을 포괄하면서도 정확성을 기해 당시 세계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계절출판사 발행.

정리=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편집 부문 후보작

한국 출판의 역량에 걸맞은 대형 기획이나 두각을 보인 시리즈물이 줄어든 반면, 출품 도서 전반의 편집ㆍ기획 역량은 한층 나아졌다는 평이었다.

글과 그림의 조화로 텍스트의 품격을 높인 <청소년 라이벌 세계사> 나 기획력이 돋보인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 과 부키의 전문직 리포트,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 , 단순한 발상이지만 독자들의 수요에 절묘하게 다가선 <청록집> 의 편집, 묵직한 기획으로 우리 출판의 자존심을 지켜준 조선통신사 견문록 번역 시리즈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기획에 인문 교양의 무게를 얹을 수 있었다는 점도 우리 출판 편집이 거둔 올해의 성과였다.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

도쿄(東京)대 응용화학과 교수 가와이 마키(河合眞木), 숙명여대 교수와 환경부장관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활동중인 김명자 의원,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 지나 콜라타,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1998년부터 미항공우주국이 지원하는 <크림 프로젝트> 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서은숙 메릴랜드대 교수 등 세계적인 이공계 출신 여성 7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2005년 1월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과학 커뮤니케이션팀이 기획한 프로젝트다. 이들의 유년의 꿈, 과학에 대한 열정과 여성으로서의 삶 등을 전한다.

붓끝으로 부사산 바람을 가르다 등

한일관계의 현안들은 대부분 역사적 연원을 갖는다. 과거로부터의 연속선상에서 현상을 파악하지 않을 경우 피상적인 이해에 그쳐 해법을 찾는데도 별 도움이 안 될 공산이 크다.

이 기획 시리즈는 조선후기 조선통신사의 견문기록이다. 통신사행(使行)의 대미를 장식한 계미사행(1763~64)의 제술관 남 옥의 <일관기(日觀記)> 를 번역한 위 책 외에, 서기 성대중이 일본인의 본질을 꿰뚫으며 당시 조ㆍ일 관계의 문제점을 짚은 <일본록> 을 번역한 <부사산 비파호를 날듯이 건너> 등 4권이 출간됐다.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

이명현(서울대 철학), 김광억(서울대 인류), 장회익(서울대 물리), 김주연(숙명여대 독문),임현진(서울대 사회), 최재천(서울대 생물), 박석재(한국천문연구원장), 김석철(명지대 건축) 등 49명의 강단 학자들이 대학의 기초, 첨단응용학문에 이르는 다양한 전공의 선택과 진로 문제에 대해 성실히 안내한 실용서이자, 해당 학문에 대한 깔끔한 교양서다. 전공 공부법과 졸업후 진로, 강의 현장 경험 등을 전하며 조언하고 있다. 전공 학문에 입문하기에 앞서 읽어야 할 추천도서도 소개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책과함께 발행

3ㆍ1운동 직후 한국을 여행했던 엘리자베스 키스와 엘스펫 키스 자매가 자신들의 체험을 글과 39점의 그림으로 옮긴 <올드 코리아> 를 완역한 책이다. 조선의 자연에 대한 감흥과 한국인의 품성, 일제 만행 등을 폭로하는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지체 높은 귀족 뿐 아니라 담뱃대를 문 촌로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도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글과 그림의 조화, 그림의 맛을 살리기 위해 텍스트를 가로 혹은 세로로 교차 편집한 점 등이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

예비 직장인을 위해 직업세계를 소개한 책은 흔하지만, 실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책은 드물다. 이 시리즈는 현직 종사자들이 자신의 직업 세계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 쓴 ‘현장 보고서’로, 직업 선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기획됐다. 가령 <판사 검사 변호사가 말하는 법조인(8권)> 은 예비 판사, 형사ㆍ민사합의부 판사, 부문별 전문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 변호사, 기업 소속 변호사 등이 필자로 참여해 일과 애환을 들려준다.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7>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6> 등이 있다.

청록집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3인 합동 시집인 <청록집> 의 출간 60돌을 맞아 기획 출판된 이 책은 현행 맞춤법에 맞게 시구를 수정하고 주석을 단 판본과 1946년 초판본의 표지와 내용을 컴퓨터로 스캔해 전재한 판본을 나란히 엮는, 획기적 편집이 돋보인다. 초간본의 맛을 느끼게 하는 이 복간본이 대중적

호응을 얻으면서 문학사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는 <청록집> 이 다시 읽히는 계기를 마련했고, 마찬가지로 올해 출간 60돌이 된 <지용시선> 과 <석초시집> 이 같은 편집으로 이어 출간됐다.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세계사

동서 문명의 맞수인 한나라와 로마제국, 민주와 독재의 상징처럼 언급되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게르만 대이동과 중세유럽 탄생의 주체였던 게르만족과 라틴족, 좌익과 우익, 흑인과 백인, 척사와 개화, 세계화와 반세계화…. 역사의 맞수들을 통해 인류사 갈등과 진보, 경쟁과 공존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기획 아이디어 자체가 신선한 것은 아니나, 자칫 피상적으로 흘러 식상할 수도 있는 기획을 알차게 소화해낸, 역사 교양서 전문 저자의 공력이 돋보인다.

정리=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어린이·청소년 부문 후보작

시선의 동선까지 감안한 텍스트와 도판 배치 등 편집이 돋보인 책이 늘었다는 평이었다. 고전읽기 시리즈 등 논술시장을 겨냥한 책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청소년 출판의 큰 흐름을 형성했고, 교과서의 확장된 지면을 연상시키는 실망스러운 책들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교양적 지식의 비중이 커졌다는 점은 희망적이었다. 과학 분야에서 국내 저자가 쓴 마땅한 기획이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됐다.

국어시간에 매체 읽기

읽기의 대상이 꼭 책일 필요는 없다. 인터넷, 휴대폰, 만화와 영화, 텔레비전 등 모든 매체들이 국어의 텍스트다. 인간 사이의 소통을 돕는다는 점에서 모든 매체는 언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친숙한 매체들을 국어 교육에 활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 랩의 라임을 뜯어보고, 뉴스의 한 토막을 분해하고, 비트박스를 따라 해보고,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시점을 들여다보고…. 책은 실전 가이드북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안내 글을 싣고 있다. 나라말 발행.

다큐동화로 만나는 우리 역사(1~8권)

<수원 화성과 정약용> , <강화도의 서양함대와 대원군> , <동학과 녹두장군 전봉준> , <개화파와 김옥균> ,… <저항문학과 한용운> . 역사 현장 속에 우뚝 섰던 인물들을 조명한 청소년 교양도서다. 기존 위인전들이 한 사람의 일대기를 중심에 둬왔다면 이 시리즈는 시대적 배경, 사회상 등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풍성하게 삽입해 주인공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돕는다. 관련 사진과 그림, 삽화, 지도를 곁들였고, 각 장의 끄트머리마다 중요한 역사 상식을 박스 기사로 처리했다. 서강북스 발행.

들풀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백성이야기(1~3권) 홍순명 지음.

환경ㆍ교육 운동가인 저자가 전래의 이야기들을 “현재와 미래 이야기”로 고친, 고전 개역 이야기책이다. ‘새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개혁 실패의 원인을 기존 질서의 완고함과 혁명적 방식의 내적 한계 등으로 설명하고, 이몽룡은 과거시험을 치르는 대신 외적의 침략에 대비해 백성 계몽활동에 나선다. 전래의 이야기가 지닌 긍정적 의미(도덕적 가치관 등)는 살리되 가족이기주의나 비민주적 상하관계 등 부정적 의미는 줄이자는, 저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새롭게 태어난 전래의 이야기, 위대한 평민들의 이야기다. 부키 발행.

바리공주 김승희 글ㆍ최정인 그림.

우리 신화 속에서는 드문, 여성 주인공이 바리공주다. 이 책은 부모의 병에 듣는 약을 구하러 서역으로 떠난 15살 소녀의 고행을 담고 있는 이야기 그림책이다. 이 책이 지닌 독특한 매력은 “곱고 쉽고 예쁜” 어린이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 무가 형식의 4ㆍ4조 율격을 충실히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바리공주 깜짝 놀라 비녀 빼서 땅에 놓고 댕기 풀어 나무에 걸고…” 전통의 오방색을 주조색으로 다채로운 바리공주의 표정을 살린 그림도 아름답다. 비룡소 발행.

서해클래식(전10권)

고전의 이끼를 걷어내고 새롭게 분칠하려는 게 드문 시도는 아니다. 방대한 분량, 낯설고 난해한 표기나 문맥에 지레 질려버려 고전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 가공의 결과물이 폭 넓은 독자층으로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얻은 경우도 드물다. 가공의 도가 지나쳤거나 재주가 어설펐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번역과 요약ㆍ편집 등 면에서 표나게 공을 들인 책이다. 적어도, 고전의 명성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한 경우와는 확연히 차별된다. 동방견문록, 신곡, 유토피아 등을 편한 문장과 풍성한 도판으로 만날 수 있다. 서해문집 발행.

설빔

설빔은 설에 입는 새 옷이다. 요즘에는 낯설어진 풍속이지만 설빔 입기는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새해의 첫 아침을, 어른과 이웃들을 만나자는 뜻이 담겨있다. 이래저래 아이들은 설렘 속에 설을 기다린다. 드디어 설날, 첫 눈이 내린다. 아이는 그 사이 몇 번이고 머리 속으로 입어보던 색동저고리와 다홍 비단치마를 꺼내 하나씩 입는다. 솜버선을 신고…, 배씨댕기를 넣어 귀밑머리를 땋고…. 책은 설날 아침의 정갈함과 아이의 설렘,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고운 그림과 절제된 텍스트로 전한다. 사계절 발행.

옥스퍼드 위대한 과학자 시리즈(전20권)

과학자 시리즈 하면, 위인전처럼 대부분 스타 과학자들에 대한 찬양 일색이기 십상이다. 이 시리즈는 과학자들이 주인공이지만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전기”라 할 만하다. 15세기 자연과학자 코페르니쿠스에서부터 20세기 노벨물리ㆍ평화상의 물리화학자 폴링에 이르기까지 총 20여 명의 과학자들을 과학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만날 수 있다. 가령, ‘컴퓨터의 아버지 배비지’나 ‘현대의학의 선구자 하비’ 등은 이 시리즈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과학자들. 프로이트나 미드 등 인문학자도 포함돼있다. 바다출판사 발행.

철학, 역사를 만나다

철학은, 설령 그것이 순수 형이상학의 맥락에 얹혀있는 듯해도, 당대의 고민과 깊은 층위에 닿아있기 마련이다. 철학은 현실 속에서 탄생하고, 현실에 개입하며, 새로운 철학으로 나아간다. 이 책은 철학을 현실 역사의 맥락 위에서 소개한 입문서다. ‘로마제국을 지탱한 국가 철학- 스토아학파’ 춘추전국의 혼란을 잠재운 상앙과 한비자의 철학, “17세기 이성의 빅뱅 시대를 연” 데카르트의 코기토, “자본주의에 날개를 달아”준 공리주의, “자본의 멱살을 거머쥔” 마르크스 철학…. 팁 정보와 추천도서도 달려있다. 웅진지식하우스 발행.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 일연 지음ㆍ김혜경 편역

삼국유사를 모르는 청소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고전의 재미를 아는 이 역시 별로 없다. 이 책은 고리타분한 옛 역사가 아니라, 풍부한 이야기를 내장한 이야기책이다. 삼국 개국왕들의 탄생설화나 연오랑ㆍ세오녀 이야기, 만파식적, 역신을 감화시킨 처용,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 등의 출전이 모두 삼국유사다. 재미 때문에 이 책이 고전인 것은 물론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 역사가 있고 선조들의 정신이 있다. 청소년들의 구미를 사로잡을 만큼 자상한 설명과 풍성한 사진이 돋보인다. 서해문집 발행.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정치’가 청소년들에게 터부시되는 실정이다. 그러해도, 아니 그래서 더욱 청소년들에게 참 정치를 알려야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대 철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가 무엇이고, 왜 정치라는 행위에 참여하게 되는지를 철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안내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특성, 지배와 복종과 저항의 의미, 민주주의의 탄생과 발전 등을 현실적 이슈와 신화 역사 문학을 재료 삼아 종횡무진 풀어낸다.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전문용어나 개념어를 동원하지 않고 쉽게 전한다. 웅진지식하우스 발행.

초정리 편지

조선시대 하층민들의 삶과 세종의 한글 창제의 의미을 결합시킨, 창의성이 돋보이는 역사동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뒤 눈병이 나 충북 청원의 초정약수터로 요양을 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세종은 그 산 속에서 어렵게 석수장이 일을 배우고 있는 ‘장운’이라는 아이를 만나, 그와 그의 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 세월이 흘러 누이가 시집을 가서 한글로 편지를 보내오고…. 작가는 이야기 속에 한글 창제의 의의와 우수성, 아이들의 꿈과 좌절의 일상을 생생히 담아낸다. 창비 발행.

정리=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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