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여덟 살이 되니까, 새알은 여덟 알만 주구려.” “여든은 앞둔 할망구가 애기들 앞에서 주책이구만 주책. 그냥 주는 대로 먹어.” “아이고 잘난 할망구는 나이대로 한번 잡숴 보슈.”
13일 정오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청운양로원 점심 식탁에는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빨간 팥죽이 올랐다. 오전에 청소와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봉사활동을 한 죽 업체, 본죽 직원 30여명이 동지(22일)를 앞두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노인들에게 팥죽을 만들어 대접하는 날이었다.
이날 점심에는 60여명의 양로원 노인과 40여명의 요양원 노인 등 100여명이 동지팥죽을 먹으며 팥죽에 얽힌 추억을 떠올렸다.
박근순(77) 할머니는 “젊어선 씹는 맛없이 술술 넘어가는 죽이 참 싫더니, 이가 다 빠지고 나니 죽 맛을 알겠다”며 죽이 잔뜩 묻은 숟가락을 치켜들었다. 박 할머니는 자신이 내년에 여덟 살이 된다고 말해 주위를 웃기기도 했다. 그 옆에 앉은 최주임(86) 할머니는 한 그릇을 다 비웠다며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다.
양로원에서 3년째 생활하고 있는 문정애(78) 할머니는 죽을 받아 들고“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팥죽인지 모르겠다”며 “50년도 훨씬 전 시집살이에 부르튼 손에 쥐어 주시던 친정 어머니의 죽 맛과 똑같다”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봉사활동에 나온 본죽 관계자는 “조상들은 동짓날에 동지팥죽을 서로 나누면서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며 “자식들과 떨어져 외롭게 사시는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생활하라는 뜻에서 팥죽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말을 맞아 사회복지 시설에 각계 각층으로부터 온정이 쏟아지고 있다. 이곳 청운양로원의 경우 12월에만 30여 곳의 기업과 사회단체ㆍ개인 등이 일정을 잡아 다녀갔거나 봉사활동을 기다리고 있다.
양로원의 한 관계자는 “동짓날에 이미 다른 단체의 봉사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어르신들이 동지팥죽을 앞당겨 드시게 됐다”며 “연말이라 많은 분들이 양로원을 찾아주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종로구청 사회복지과 직원인 김대은씨는 “어버이날과 명절, 연말 등 특정 시기에 봉사단체와 개인들의 활동이 복지시설에 몰리고 있다”며 “일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 찾아 주면 어르신들도 더욱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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