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남긴 음식을 싸 달라 부탁하면 예쁘장하게 포장해서 선물처럼 건네준다. 왈, 'dog box'인데 근자에는 그 말을 못 들었다. 내가 20대 때는 수줍은 얼굴로 종업원에게 양손으로 작은 상자를 그려 보이며 "도그박스 좀 해 주세요" 했었다.
물론 집에 가져가서 내가 먹을 것이었다. 식당에서도 그걸 알면서 손님 체면을 살려주려고 짐짓 개를 위한 상자라 이름붙인 것이리라. "개나 갖다 먹이려고요", 구실을 대는 사람이 많은 데서 비롯됐을 테다.
일전에 한 송년파티에서 정반대 풍경을 보았다. 모임이 파할 무렵에도 뷔페 테이블에 음식이 넘쳐났다. 그런 자리에서 남은 음식은 모두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다.
저걸 가져가면 우리 동네 고양이들이 포식할 텐데. 이미 식어서 굳기름이 엉긴 육류 음식을 탐내며 서 있는데 한 소설가 선생님이 다가왔다. 그분은 잠시 망설이다 모임 주최자에게 음식을 싸달라고 했다.
반색하며 정성껏 갈비찜이니 고기경단을 싸던 호스트가 문득 물었다. "개 주려는 거 아니지요?" 그러자 소설가는 뜨끔한 얼굴로 "아니에요. 내가 먹을 거예요!" 하셨다. 그분 댁에는 먹성 좋은 큰 개가 세 마리 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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