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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문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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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문열의 추억

입력
2006.12.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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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을 떠올린다는 것은 지나온 인생 역정을 추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의 어느 단락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든 그의 소설은 어김없이 배경화로 함께 떠올려진다.

젊은 날 누구나 한번쯤 존재론적 고민에 빠지게 했을 <사람의 아들> , 삶에 대한 고뇌와 불안으로 밤을 새우게 한 <젊은 날의 초상> , 더불어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게 했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유장한 고어체 문장의 아름다움에 숨을 멎게 했던 <황제를 위하여> 나, 권력과 인간의 위선적 속성을 통렬하게 까발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은 또 어땠던가.

▦ 하지만 이문열에 대한 평가는 갈수록 냉혹해진다. 무엇보다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적 견해를, 그것도 직설적으로 내뱉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최근 젊은 문인들이 가장 과대평가된 작가로 그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는 소식도 있었다.

'작품 질에 비해 지나친 권력 보유' '정치적 발언의 파장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 결여'가 이유라고 했다. 태도의 문제로 문학적 성과를 폄훼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일신의 보존이나 영달을 꾀해 권력에 빌붙는 것도 아닌 정치적 선택을 서정주의 친일행각과 같이 보는 게 그다지 마땅치는 않다.

▦ 이문열은 근작 <호모 엑세쿠탄스> 로 또 비난(거의 조롱에 가까운)을 받고 있다. 그는 "내 주장을 펼친 게 아니라 사회에 존재하는 한 극단세력의 주장을 '문학'으로 표현한 것"이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불길하게 감지되는 하나의 흐름을 쓴 것"이므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독법으로 읽어도 이 소설은 그의 희망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유대역사와 한국의 현실을 겹쳐 그려낸 액자소설 형식의 이 작품은 문학적 향기가 증발된 메마른 문장 속에 강파른 정치적 주장들만이 앙상하다.

▦ 실상 변변치 않은 경험의 폭에도 두루 삶의 과정을 밟아온 듯 느끼는 데는 이문열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다. 그래서 지금 그를 보는 심정은 세월에 쓸려 남루해진 옛사랑을 마주하듯 슬프고 안타깝다.

일찍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 없이는 어떤 문학도 감동시킬 수 없다'고 썼다. 사소한 일상 속의 고만고만한 의미 찾기에나 몰두하는 요즘 문학풍토에서 '문학인' 이문열은 더욱 그립다. 존재문제에서 사랑얘기까지, 정통 리얼리즘서부터 우화형식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사와 문장에 도무지 거침이 없던.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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