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야독’ 현장인 야학의 등불이 내년부터 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청소년 교육 일환으로 지원해온 야학 운영자금 지원대상을 청소년 야학으로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야학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무학 설움을 씻어주는 평생교육기관으로 자리잡은 만큼 지원이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국가청소년위원회에 따르면 내년부터 ▦청소년(24세 이하) 비중이 80% 이상인 비정규학교 ▦상시 학생수 10명 이상인 야학 등에만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가청소년위원회 관계자는 “1989년부터 청소년 육성기금으로 야학을 지원해왔으나 성인들이 대부분인 학교에 보조금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올해 전국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은 비정규학교(야학)는 모두 156곳으로 8,000여명의 학생들이 매일 밤마다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1997년 결성된 전국야학협의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의 야학은 200여곳이었으나 최근 수년간 한글교실인 ‘문해교육반’이 대거 늘어나 500여곳에서 2만여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1906년 함흥의 보성야학을 시작으로 100년간 이어온 야학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안학교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중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되면서 구성원이 대폭 바뀌었다. 야학에 다니는 청소년 비율은 20%선으로 뚝 떨어졌고 나머지 자리를 노인들이 채웠다.
대구에는 보조금을 받는 야학이 새얼학교와 삼일야간학교, 혜인학교 등 6곳이 있지만 국가청소년위원회와 각 지자체가 매칭펀드 형식으로 절반씩 지원하는 보조금이 끊길 경우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1981년 문을 연 혜인학교의 경우 보조금을 못받더라도 대학생과 직장인 등 13명의 교사가 십시일반해 학교를 운영할 예정이지만 언제 문을 닫을지 알 수 없다. 올해 청소년위원회와 대구시로부터 받은 보조금 800여만원은 모두 운영비로 쓰였다. 교사들은 모두 대학생과 직장인 등으로 무보수로 자원봉사하면서 오히려 매달 운영비 명목으로 5,000원씩 내고 있다.
이 학교 권기범(31) 교감은 “1990년대 초반에는 학생수가 80명에 이를 정도로 야학을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10명에 불과하다”며 “현재 9명이 성인이기 때문에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지원을 끊으면 지자체도 보조금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남부교육센터라는 야학을 운영하고 있는 김한수(32ㆍ범야학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씨도 “학생 70명중 대부분이 노인과 해외이주노동자여서 보조금이 끊기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위원장은 “역사가 깊은 야학들이 많은데 야학생이 청소년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조금을 끊는 것은 너무하다”며 “학원 수강생에게까지 정부예산이 지원되고 있는 것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전국야학협의회는 16일 비상총회를 열어 정부의 대책을 촉구할 예정이다.
현재 전국에서 야학 93곳이 내년 보조금을 신청한 상태지만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실사에서 자격미달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해 11월 전국 야학 160곳에 1,000만원씩 지원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가 국회에서 예산이 삭감되면서 철회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가청소년위원회 대신 교육부와 산업자원부 노동부 등 타 부처가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가청소년위원회 복지지원팀 엄병오 주무관은 “야학 구성원이 바뀌었으니 이를 지원하는 부처도 교육부나 노동부 등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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