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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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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인간의 조건

입력
2006.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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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밤을 묵은 그 숙소는 대체로 흡족했다. 넷이 여기서 어떻게 복닥거리나 망연했던 첫 인상과 달리 충분히 편했고 따뜻했다. 잠자는 사람은 절대 깨우지 않기로 약조했기 때문에 이틀 동안 일행보다 일찍 깬 나는 정오가 다 되도록 따끈한 주방 바닥에서 이불을 감고 뒹굴며 느긋이 책 두 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권이 이혜경의 소설집 <틈새> 다. 거기 실린 한 단편 주인공의 직업이 여행가이드다. 그녀의 동료 하나가 집 밖에선 화장실 용무를 볼 수 없는 체질이다. 왈, '변기형상기억항문'의 소유자라나.

우리 중 누구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들 화장실 문제로 불편을 겪고 있었다. 다른 분야엔 뻔뻔하고 별소리 다 하는 사이면서 '용변 문제'에 있어선 서로 낯을 가렸다.

한 친구는 차 몰고 '오션 캐슬'까지 가서 화장실을 쓰고 왔고, 식당에 가면 모두 화장실에 들르곤 했다. 우리 숙소 화장실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더 머물렀으면 집단으로 악성변비에 신경쇠약을 겸했을 것이다.

잠은 한 방에서 다 몰려 자더라도 한 사람에 하나씩 뚝 떨어진 화장실만은 돌아가야 한다. 그런 숙박업소가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때 꼭 거기 묵을 것이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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