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등 3개국 순방에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아끼고 있다. 출국한 후인 4일에도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하며 열린우리당 내 통합신당파를 공격했던 노 대통령이다. 그의 귀국 후 침묵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이와 맞물려 당내 친노파도 공세를 자제하면서 치킨게임을 방불케 하던 우리당의 갈등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현재로서는 대통령이 특별히 입장을 밝힐 정치적 사안이 없다”며 “당분간 국정현안을 챙기는 일에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이 깨지는 상황을 감수하고 전면전을 벌이기 보다는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낫다는 청와대와 친노파의 교감이 느껴진다.
물론 청와대 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침묵이 당원편지 등을 통해 당의 진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모두 밝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정계개편 등 정치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며 관망했다. 산적한 국정현안을 제쳐둔 채 정치게임에 골몰한다는 비판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달 말부터 우리당 비대위가 신당창당을 기정 사실화하는 등 상황이 급변하자 “신당은 지역주의로의 회귀”라며 작심하고 개입했다.
청와대 한 측근은 “대통령은 당원편지를 통해 신당창당 등 정계개편 등에 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노 대통령의 분명한 의중이 당에 전해지면서 비대위가 비정상적으로 몰고 가던 신당논의에도 제동이 걸리는 등 상황이 변했다”며 “당분간 당내 논의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대립이 한 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대통령이 갈등을 부추기는 당사자로 개입하는 모양은 여러 모로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침묵은 시한부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우리당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신당 창당흐름이 탄력을 받을 경우 노 대통령은 지금보다 훨씬 격렬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당대회를 연다 해도 노 대통령은 자신의 당 사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개입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당내 역학 구도상 친노파는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 만큼 노 대통령의 직접 간여가 불가피하다. 자칫하면 신당파가 당을 장악, 세가 위축된 친노파가 탈당을 강요 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탈당 등 소극적 대응에서 당 사수로 생각을 바꾼 노 대통령은 침묵하든, 그렇지 않든 당내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는 셈이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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