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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몰입'의 축복과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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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몰입'의 축복과 재앙

입력
2006.12.1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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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에 대한 한 자리수 지지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 정권이 잘한 일도 많은데 그건 생각해주지 않고, 잘못된 건 무조건 노 정권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개탄한다.

일리 있는 개탄이지만, 그렇게 개탄하는 분들은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원인 규명은 시도하지 않거나 야당과 보수신문 탓으로 돌리려 한다. '야당ㆍ보수신문 탓'에도 일리는 있겠지만, 더욱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몰입'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잠시 몰입에 대해 생각해보자.

● 노 정권 낮은 지지도 원인 뭘까

몰입은 축복이다. 자연, 사물, 일 등에 몰입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또 있을까. 그러나 인간관계에서의 몰입은 축복일 수 있지만 재앙일 수도 있다. 스토킹은 바로 몰입의 산물이다. 인터넷시대의 '빠' 문화와 '까' 문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갈등상황에서의 몰입은 자해(自害)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몰입은 무엇보다도 균형감각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오랜 기간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겪어본 적이 있다면, 우리 인간의 균형감각이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걸 절감했을 것이다. 다른 모든 면에선 대단히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일지라도 일단 싸움에 휘말려들어 몰입하게 되면 전혀 딴 사람이 된다. 가장 먼저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을 잃는다. 상대편의 언행은 무조건 악의적으로 해석한다. 사람이 오랜 싸움을 하면 정신이 피폐해진다는 건 바로 그 점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른바 '분노→증오→숭배'의 법칙이란 게 있다. 처음엔 정당한 분노였을지라도 그 정도가 심해지면 증오로 바뀌고 증오가 무르익으면 증오의 대상을 숭배하게 된다. 싸움을 하는 상대편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냥 잠자코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일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건 그 상대편에 대한 몰입으로 인해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이치가 노 정권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노 정권은 강한 개혁 열망을 품고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혁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은 '수구 기득권세력'에 주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주목의 정도가 너무 강했다는 점이다.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주변'이라 함은 바로 국민이다. 노 정권은 국민이 아니라 야당ㆍ보수신문을 상대로 정치ㆍ행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TV토론에서 B가 A의 말을 왜곡했다고 가정해보자. A가 그 왜곡에 몰입하게 되면 진도를 나가기 어려워진다. 시청자는 A의 항변이 타당하다고 인정할망정 A가 느끼는 분노에까지 공감하진 않는다.

아니 공감할 수 없게 돼 있다. 시청자가 원하는 건 좋은 내용의 토론이지 토론자들의 인격에 대한 품평이 아니다. 그럼에도 A가 토론 내내 B의 왜곡을 질타하면서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시청자는 짜증을 낼 가능성이 높다.

● 수구 기득권 세력 공격에만 몰입

우리는 그럼에도 A가 그런 분노의 와중에서 내놓은 발언의 품질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게 옳겠지만, 그건 실제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A가 B에 대한 공격에 몰입한 나머지 책임지기 어렵거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발언들을 남발했다면, 더욱 그렇다. 노 정권이 국민적 분노와 조롱을 넘어 아예 무관심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하게 된 데엔 바로 그런 행태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싸움이 치열할수록 몰입은 '자기 성찰'을 원천봉쇄한다. 몰입은 상대편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어져 상대편의 허물은 크게 보고 자신의 허물은 사소하게 여기는 심리를 낳기 때문이다. 몰입이 노 정권의 낮은 지지도에 큰 책임이 있다는 가설이 타당하다면, 남은 1년은 노 정권의 명예회복을 위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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