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실서 보고 받음, 통제초소 직원 격려, 방역복 입고 사진 촬영, 인근 식당서 삼계탕 먹고 돌아가기.'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지역인 전북 익산과 김제 지역을 잇달아 찾고 있는 정치인들의 똑 같은 일정이다. 11일 오후에 들른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한화갑 민주당 대표, 12일 도착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도 그랬고, 앞서 방문했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이나 농민들의 눈길은 갈수록 싸늘하기만 하다. 방역작업이나 살처분하기도 손이 모자랄 판에 이들을 맞느라 더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실 공무원은 "정치인들이 방문한다는 연락이 오면 거절도 못하고 이때부터 보고서 자료 만들고 의전 준비하느라 다른 일은 전혀 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워낙 거물들이라서 지구당 관계자들과 방문 현장을 사전 답사까지 해야 하니 살처분 작업까지 지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정치인을 만날 때마다 요청한 보상 대책에 대해 여태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익산 상수도 설치비 가운데 지방비 부담액(20억원)을 국비로 지원하고, 경계지역 주민들의 간접 피해를 보상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현장에서는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돌아가면 그걸로 끝"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의 방문이 중앙정치권에서 현지 피해 상황에 대해 관심 표명으로 생각해 그들을 열심히 안내했던 주민들이 정치행사에 들러리 선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조만간 이 지역에 '정치인 방문사절' 팻말이 붙을지도 모르겠다.
최수학 사회부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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