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선 주자를 말할 때 흔히 '빅3'라고 하지만 지지세의 정도로 견주어 이는 사실 맞지 않는 표현이다. 열린우리당에 후보군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바람에 한나라당 세 사람을 지칭하다 보니 그리 쓰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 경쟁 판세는 양강 구도이지 결코 빅3라고 할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와 함께 거론되는 손학규의 경우 지금껏 한 자리 숫자 지지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한 때 5% 수준을 기록한 것을 두고, 오를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으나 최근 어떤 조사에서는 2%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그를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이유
선거 보도의 폐해로 자주 지적되긴 하지만 만일 경마식 보도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라면 이런 주자가 언론에 등장할 기회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게 통상적이다. 거기에 비하면 손 전 지사는 지금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기사를 소홀히, 또는 적당히 다룰 수는 없다. 한나라당 자체가 집권 가능성이 크게 돼 있는 정당인 데다, 그는 스스로 출마할 의사를 밝힌 사람에 속한다. 때문에 언론으로서 그에 대해 생각할 정보를 제공하고 평가할 근거를 제시하는 일을 가벼이 할 수 없다.
손 전 지사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가 표방하는 가치와 원칙, 이런 것들을 토대로 실패를 경험한 우리 사회가 모색해야 할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토론의 과정이다.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은 공익적인 것이고, 중요한 것이다.
현 정권의 실패를 중심으로 말한다면 다음 대선은 정권 교체가 필연적이다. 좌파나 우파라는 용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생략한 채 시중의 거친 표현대로 하자면 대선에서는 '반(反) 좌파'라는 테마가 형성될 소지가 크다.
같은 식으로 그것은 '반 진보'일 수도 있지만, 가장 압축적인 내용은 아마도 '반 노무현'이라는 뜻을 담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당의 재집권은 한마디로 무망한 일이다. 여당의 핵심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지금 열린우리당으로는 하느님이 와도 어렵다"고 했다. "덕치(德治)가 가장 부족했다"는 게 그가 꼽은 제일의 원인이니, 그의 내심에는 원망과 억울함이 차 있다.
정권 교체가 궁극적 목표가 되면 현 상태의 손 전 지사의 기능과 영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좌파의 계속이냐, 중단이냐를 결정하는 승부에서 그가 내보이는 정치적 개성과 가치들은 제대로 빛을 볼 여지를 갖지 못한다.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가 이미 경쟁 고지의 상당부분을 선점하고 있고, 그대로 나가 이들이 대안이 된다 해도 무방하다. 한나라당에 떨어지게 될 기회에서 경우의 수는 단순하다. '반 노(盧)'만 성취하면 그게 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모든 힘을 모아 일점 돌파만을 위해 달리고 나서 그 결과가 허전할 수 있음을 미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능력과 리더십, 정책방식에서 대별되는 점이 있지만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사실 뿌리와 컬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양옥이냐 한옥이냐, 2층 집이냐 3층 집이냐의 차이 정도일 것이다.
같은 당이지만 두 사람과 손 전 지사의 대비는 보다 두드러진다. 그는 민주화 투쟁의 일선 세대이자, 생산과 실적을 올린 손과 발, 행정 실습과 통치의 연습 경험을 가진 '다기능' 보유자이다.
● 물건 아무리 좋아도 손님 안 들면
얼마 전 한국일보가 0~10 사이로 진보와 보수를 물은 자신의 이념지수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꼭 같이 5.5를 짚었고, 손 전 지사는 5.0이라고 답했다. 미시적인 이 차이가 시대적 흐름의 한 지점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선거는 후보들이 유권자들에게 내놓는 일종의 좌판이다. 선거 시장에서 좌판은 저마다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고, 앞세우는 물건들도 다르다. 좌판을 둘러보며 좋은 물건 고르고 허풍을 가려내는 것은 어찌 보면 유권자가 누리는 쇼핑의 즐거움이다.
아무리 물건이 좋다고 외쳐도 손님이 들지 않으면 그만인 게 좌판이다. 손 전 지사의 좌판은 지금 손님을 끌지 못한다. 물건은 괜찮다는데 왜 그럴까. 답은 그에게 달려 있지만 그의 좌판은 그저 지나치고 말 코너는 아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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