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을 겪고 있는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계열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다.
팬택계열은 11일 이사회를 열어 워크아웃을 진행해줄 것을 채권단에 공식 요청했다. 이에 앞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 12개 채권은행은 지난 8일 회동을 갖고 팬택계열에 대한 워크아웃 입장을 확인했다.
워크아웃이 공식 발효되면 팬택계열에 대한 채무상환이 일단 유예되며, 실사를 거쳐 구조조정과 출자전환, 감자, 신규자금지원 등 세부 회생방안이 확정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박병엽 부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팬택계열의 은행권 채무는 총 1조4,753억원. 이밖에 기업어음(CP) 1,606억원과 회사채 6,555억원 등이 있다. 은행들은 일단 워크아웃 절차에 동의했으나, 워크아웃 추진 근거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해 말 만료돼 워크아웃을 진행하려면 금융기관 뿐 아니라 어음보유 기업 및 금융기관 등 채권단 전체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의 입장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1991년 무선호출기(삐삐) 메이커로 시작해 모토로라 납품으로 휴대폰 제조에 뛰어든 팬택계열은 현대큐리텔과 SK텔레택(휴대폰 SKY제조업체)를 잇따라 인수하며, 신화창조의 주역으로 주목 받아왔다.
그러나 세계시장 공략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속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에서 손을 떼고, 성급하게 자체 브랜드전략을 채택한 것이 결국 실패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마케팅 비용으로만 2,0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은 유럽 진출은 막강한 자금력과 유통망을 가진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의 벽에 부딪쳐 좌절되고 말았다.
팬택계열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약 1,000명의 인원을 정리하고 생산 라인 및 제품 모델 축소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판매부진으로 재고가 늘고 부채비율이 600%까지 치솟으며 위기를 맞게 됐다.
향후 팬택계열은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OEM 및 제조자산방식(ODM) 확대 등을 통해 정상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랜드 전략에선 실패했지만 기술력에선 경쟁력을 갖고 있는 만큼 현금창출을 통한 중장기적 회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일본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내년부터는 미국 유티스닷컴과 납품계약 등 대형 물량공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수익성도 좋아질 것이란 얘기다.
팬택계열 관계자는 "판매량이 꾸준히 늘면서 현금흐름이 개선되고 있다"며 "채권단이 일시적으로 채무상환만 유예해준다면 충분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이라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박병엽 부회장 "일터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임할 것"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 워크아웃이 공식 발표된 11일 오후 회사 회생을 다짐하는 내용의 ‘CEO 메시지’를 사내 게시판에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박 부회장은 채권단에 기업개선작업을 공식 요청해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골자의 메시지에서 지난 16년간 벤처 1세대로 느끼는 국내시장 환경에 대한 비애와 팬택의 위기를 반드시 극복해 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그는 우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채권단을 설득해 자율적인 기업개선작업 협약을 이끌어낸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비록 워크아웃에는 들어갔지만 역으로 팬택의 경쟁력과 잠재력을 외부로부터 인정 받은 셈이라는 것이다.
그는 팬택계열의 경쟁력은 ▦미국 일본 멕시코 등 시장을 다변화했고 ▦세계적 이동통신사들을 공급처로 확보했으며 ▦국내에서도 SK텔레콤 KTF LG텔레콤에도 동시에 판매됐던 점을 꼽았다. 그는 일시적 유동성 부족은 극복해야 할 많은 난관 중 하나일 뿐이며, 앞으로 채권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인정하는 매력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을 경영실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회장은 그러나 “우리는 많은 실수를 범했고 경영진은 이 과정을 거치며 ‘한번의 실패는 있어도 두번의 실패는 있을 수 없고, 시장은 우리에게 두 번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기업에서부터 성장해 오면서 갖게 된 근성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며 오늘날의 팬택계열을 만들었다”며 “경영진은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일터에서 죽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업무에 임할 것임을 약속 드린다”고 다짐했다.
그는 특히 “팬택계열의 좌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고 역동적인 기업의 좌절에서 더 나아가 창업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갈 수 있는 만큼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혼연일체된 자세로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촉구했다.
팬택계열 고위 관계자는 CEO 메시지에 대해 “휴맥스와 함께 벤처 1세대의 맥을 이어온 박 부회장이 처음 시장에서 실패한 것에 대해 깊이 뉘우치며 뼈를 깎는 각오로 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팬택계열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팬택계열은 지난 2005년 내수시장에서 삼성전자ㆍLG전자와 저가폰 경쟁이 격화되면서 큰 손실을 입고, 해외 팬택 자가 브랜드 마케팅에는 성공했으나 아직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회임기간이 안된 것이 중요한 시장의실패로 자체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팬택계열은 그러나 그동안 어려움을 딛고 미국, 일본, 멕시코 등 시장을 다변화했고 세계적 이동통신사들을 공급처로 확보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스카이가 SK텔레콤은 물론 KTF, LG텔레콤에도 동시에 판매되는 등 국내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12개 채권 금융기관에 자율적인 기업개선작업 추진을 공식 요청했고 채권기관들도 자발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체 협의를 진행하며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
그러나 박 부회장의 글에는 페이저(일명 `삐삐')를 시작으로 지난 16년간 사업을 이끌어온 벤처 1세대 주인공으로서 느끼는 한국 시장 환경에 대한 비애와 이를 반드시 극복하고 말겠다는 비장의 각오가 곳곳에 묻어났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팬택 무너지면 저가폰시장 외국에 내줄 판
팬택계열 워크아웃 여파로 국내 휴대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팬택계열이 주저앉을 경우 삼성전자 LG전자 팬택계열 등 3강 구도를 이뤘던 국내 휴대폰 시장이 2강으로 압축되면서, 외국 휴대폰 제조사들의 국내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팬택계열은 스카이 상표의 고가폰과 큐리텔 상표의 중저가폰 등 이원화 전략을 펴왔다. 특히 저렴한 큐리텔 휴대폰은 단순 통화위주의 실용적인 휴대폰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따라서 큐리텔이 사라지면, 중저가폰 시장을 메워줄 대안이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가폰 위주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노키아, 모토로라 등 외국업체들은 올해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저가폰을 내놓으며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왔기 때문에 조건만 맞으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생각하기 힘든 가격의 저가폰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할 전망이다.
이미 SK텔레콤, KTF 등 이동통신업체들은 VK부도 사태 이후 국내 시장의 저가폰 공백을 감안해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휴대폰 위주로 노키아 등과 저가폰 공급을 타진해왔다.
이동통신업체들이 외국산 저가폰 도입을 본격 추진할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이고 국내 휴대폰 부품업체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 휴대폰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팬택계열의 회생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팬택계열이 무너지면 국내 휴대폰 시장 및 관련 산업에 좋을 게 없다"며 "정부 및 업계도 산업 보호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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