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는 11일 홈페이지를 통해 제5차 2단계 6자회담을 오는 18일 베이징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개최 이후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 문제로 교착됐던 6자회담이 1년 1개월 만에 다시 열리게 됐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은 북측의 핵 폐기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초기 이행조치로서 영변 5MW원자로 등 핵 시설 가동중단과 국제원자력 기구(IAEA) 감시허용 등 핵 동결 및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 등을 요구하고 이에 상응한 대가로 북미 관계정상화 초기조치와 에너지 지원 등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북측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변화 및 대북 제재완화 등 가시적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아울러 미 재무부가 조사중인 BDA 문제도 조속한 해결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6자 당사국은 또 회담의 조속한 진전을 위해 BDA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실무그룹을 포함, 에너지ㆍ경제협력, 관계 정상화 사안별로 실무그룹을 구성하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추규호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6자회담 2단계 회의 개최를 환영한다”며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6자회담 어떻게 될까' 전문가 진단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핵동결·사찰수용↔에너지 지원
"초기 1단계 합의하면 성공"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지난달 말 베이징 북미접촉이 의미가 있었다는 반증이다. 미국측 설명은 선(先) 핵폐기가 전제돼 있지만 북미간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0년 공동 코뮈니케 합의사항을 반영했기 때문에 북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연말이 지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도 북한의 회담 복귀 이유 중 하나다.
차기 회담에서는 우선 ‘말 대 말’ 합의를 이뤄야 한다. 주목할 부분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말한 ‘한국전쟁 종료선언’ 부분이다. 이 선언은 북한에 대해 적대시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 발언을 미국측 양보로 받아들여 핵 폐기절차가 시작될 수도 있다.
말 대 말 합의가 이뤄지면 주고 받기 식 ‘행동 대 행동’ 합의로 이어져야 한다. 관건은 초기 이행조치 정도. 미국이 생각하는 이행조치와 북한의 일괄타결 주장에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협의를 한다면 순서조정도 가능하다. 초기 이행 1단계, 예를 들어 ‘핵시설 사찰단을 북한이 받아 들이고 가동 중인 핵시설을 동결하면 에너지 지원을 시작한다’는 정도의 합의가 이뤄지면 이번 회담은 성공한 것으로 봐도 된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문제는 일단 회담이 열리면 별도의 실무그룹을 만들어 논의키로 했고, 북한도 미국측의 BDA 해결 관련 긍정적 언질을 받았을 것으로 보여 회담에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 전망이다.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中 압박에 복귀… 정치적 실타래 그대로
"실질적 타협 이끌기 힘들어"
18일 6자회담이 재개돼도 구체적인 진전이나 현실적 합의를 끌어내기는 힘들다. 13개월만에 회담이 재개되지만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지도 불확실하다. 회담이 살아있으니 한반도의 핵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것도 성급하다. 6자회담과 핵 문제의 종착역이 무엇인지 가시화되지 않은데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어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회담에 복귀한 이유는 석유와 식량을 지원해 주는 중국의 압박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의 해체에 착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등을 확고하게 약속한다면 의미 있는 회담이 될 수도 있다. 미국과 한국도 만족할 수 있는 회담이 되느냐 여부는 이 같은 진전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북한과 중국에만 봉사하는 회담이 될 것이다.
북한은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동결 해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등의 복잡한 반대 급부를 요구하고 있고 정치적 문제와도 얽혀 있어 실질적 타협은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아직 위조지폐조차 인정하지 않는 등 미국과 북한의 시각차가 커 BDA 문제 역시 해결되기 힘들다.
북한의 핵 포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다른 것은 모두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 북한 정권이 핵 포기 후 경험해야 할 개혁ㆍ개방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조건을 맞춰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가설은 옳지 못하다.
6자회담 시나리오… 아슬아슬 신경전
13개월 만에 재개되는 6자 회담은 과연 어떤 여정을 걸을까. 북한 핵 문제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지, 또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지에 대해선 긍정론과 낙관론이 엇갈린다.
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관건은 사실상 북한의 핵 폐기 의지이다. 이른바 북 핵 폐기의 단계적 이행과 5자 당사국의 보상조치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얼마나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느냐가 회담의 성과를 좌우할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실질적 진전이 있을 경우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초기조치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줄 경우 회담은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미국이 내건 핵 시설의 동결과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 핵사찰 수용 등의 조치를 대폭 수용할 경우 5자 당사국의 상응조치 수준도 높아진다. 이에 따라 경색된 남북관계도 식량, 비료 등 인도적 지원재개 등 해빙무드로 전환하는 수순이 예정돼 있다. 한ㆍ미ㆍ일은 이번에 가시적 성과를 얻으면 내년 초 회담 속개시 핵 폐기 전 단계의 로드맵에 합의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 만약 북측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유엔 대북제재 해제와 5자 당사국의 경제협력ㆍ에너지 지원방안이 구체화하게 된다. 경수로 제공협의도 이 시점에서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북미간의 평화협정체결 및 수교 논의도 본격화 된다. 미측의 구상대로 내년 말 미 공화당 정부의 임기 말쯤 핵 시설 및 핵무기 해체단계가 되면 기념비적인 북미, 남북 정상 간의 종전 및 평화협정 서명식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200만KW 대북 송전도 이 시점에서 이루어지고 남북 경제교류는 다방면에서 활발해질 전망이다.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도 본격화되고 북한의 개혁ㆍ개방이 가시권에 들어 설 수 있다.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현실은 비관론이 앞선다. 정부 당국자 조차 “회담이 어려워질 요인은 98가지나 된다”고 말할 정도다. 북한과 5자 당사국간 의견 불일치로 인한 협상난항은 쉽게 예견된다. 특히 핵실험을 한 북측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더욱이 워킹그룹에서 논의키로 했던 방코델타아시아 북한계좌 동결문제의 조기해결까지 들고 나올 경우 협상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진다. 나아가 북측이 핵 보유국 지위인정을 요구하며 이에 걸 맞는 상응조치나 핵군축회담 전환을 들고 나올 경우 회담은 조기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6자회담의 무용론이 대두되고, 향후 회담재개 전망은 불투명진다. 협상동력이 상실됨에 따라 힘의 대결이 불가피해지고 한반도 정세는 다시 위기상황에 돌입한다. 북한은 또다시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미국은 군사조치를 검토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과 고립을 유려한 북한이 무리한 주장으로 회담을 깨기보다 밀고당기는 협상을 유지하며 제재완화 등 상황변화를 유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지연전술에 대해 미ㆍ일은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며 압박하는 등 팽팽한 신경전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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