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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인터뷰-대화] <40> 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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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인터뷰-대화] <40> 두더지

입력
2006.12.1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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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충목(食蟲目), 두더지과에 속하는 포유류 동물. 땅 속에 굴을 파는 삽 역할을 하는 앞다리가 특히 발달돼 있고 발은 폭이 넓으며 발톱이 길다. 강한 근육을 가진 목은 몸통과 거의 같은 두께이고 외관상 머리와 가슴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으며, 머리 생김새는 원통 모양이고 사지는 매우 짧다. 눈은 퇴화했고 털은 빽빽이 곧바로 세워져 우단같이 부드러운 감촉이 있다. 두더지는 주로 식물 뿌리가 미치는 범위의 토양층을 생활권으로 삼아 터널 망을 구축한다. 터널 망은 통로이면서 동시에 땅 속의 먹이를 얻어내는 일종의 덫 기능을 가지고 있다. 두더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4시간 잠자고 4시간 활동하는 리듬으로 터널 망을 돌아서 지렁이, 지네, 벌레의 유충 등을 잡아먹는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의 앞 부분에서 햄릿은 자기 아버지의 망령을 만나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에 관해 듣게 된다. 뒤이어 나타난 호레이쇼 등에게 햄릿이 “맹세하라”며 함구령을 요구할 때, 땅 밑에 있던 망령도 햄릿을 따라 “맹세하라!”라고 말한다. 그러자 햄릿은 “말 잘했다, 노련한 두더지여!(Well said, old mole!)”라고 한다(1막 5장). 칼 마르크스는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벌인 정치 쿠데타를 분석한 저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852년)에서, 곧 완성될 것으로 예견되는 유럽의 혁명을 가정법 어투로 말한 다음에 곧바로 <햄릿> 의 해당 대목을 약간 비틀어 인용한다 “잘 팠다, 노련한 두더지여!(Brav gewühlt, alter Maulwurf!)”

프랑스 68혁명 주역 중 한 명이었고 지금 파리8대학 교수인 다니엘 벤사이드는 그의 저서 <저항: 일반 두더지학에 대한 시론> 이란 책의 앞부분에서 두더지를 둘러싼 은유의 역사를 검토했다. 셰익스피어의 그 대사를 독일에서는 헤겔이 “잘 노동했다, 용감한 두더지여!”라고 번역한 바 있는데, 마르크스는 두더지를 단순한 노동으로 본 헤겔의 시각에 전복적 의미를 부가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단선적인 진보주의적 역사관에서는 혁명적 동력을 ‘기관차’라고 표현해 왔다. 이렇듯 혁명에 대한 과거의 표상이 선형적이고 동질적인 근대적 시간관을 바탕으로 해서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진보의 기관차를 내세우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제의 혁명은 지하와 지상을 들락거리며 당대의 흐름을 거슬러가다가 돌연히 출현하여 새로운 가능성들을 돌발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이 벤사이드의 주장이다. 마르크스의 두더지는 이미 죽었지만, 현재 속에 희망의 원리로서 잠복해 있는 두더지는 여전히 땅을 판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벤사이드의 두더지는 근대적인 동시에 탈근대적인 저항과 전복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재현(이하 현) 안녕, 요즘 날씨가 몹시 추운데도 참 바쁘더구나.

두더지 응. 해가 넘어가서 한미FTA가 체결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싸우는 중이야. 더구나 최근 미국 정부는 뼈 있는 쇠고기도 수입하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잖아. 한미FTA가 통과되면 소위 공공서비스 민영화 때문에 수도, 전기, 가스 요금이 폭등할 거야.

현 그래, 또 맹장수술에 1,000만원, 아이 낳는데 700만원이 들 거라는 얘기는 나도 들었어. 광우병 쇠고기나 유전자 조작 식품을 먹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게다가 최근에 비정규직 관련법이 통과됐으니,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는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되겠지.

두더지 멕시코의 경우 FTA 체결 뒤에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8%만이 정규직이야. 대부분 임금이 줄었고 취업자 10명 중 4명은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어. 올해 취업자의 70%는 비정규직이고. 한국도 비슷하게 되겠지.

현 통계청이 이 달 초에 발표한 사회통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중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56.2%에서 53.6%로 줄어들었고 국민 100명 중 5명이 돈 없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하더라.

두더지 한미FTA가 체결되면 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해질 거야.

현 그래서 심지어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도 반성해서 그런 사정을 감안하는 것 아니겠니? 부동산문제도 그렇고 뉴라이트 교과서 파동에 대한 나름대로의 유연한 대응도 그렇고 말이야.

두더지 그거야 잠정적으로 그럴 뿐이겠지. 내 생각에는 만약에 내년에 집권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거야. 야당인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대다수 국민을 위하고자 한다면 한미FTA 논의를 중단시켜야지. 국회 본회의 의장석을 점거해서라도 말이야.

현 그게 가능하니?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미국이랑 협상하는 건데?

두더지 카타르, 말레이시아, 태국, 아랍에미리트, 스위스 등을 포함해서 수십 개 국이 미국과 FTA 체결을 논의하다가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하거나 타결 시한을 연기했어. 그 중 스위스는 국민투표로 협상을 중洑償? 게다가 노무현 정권은 FTA 체결을 추진할 정치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밑바닥을 기고 있잖아. 각 정당은 다음 대선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각기 공약을 내걸고, 다음 정권이 이 문제를 마무리하는 게 정치적으로 옳아.

현 지난 달 집회에서는 ‘폭력적’ 양상을 보였다고 일부 언론에서 계속해서 비판했는데….

두더지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거야. 언론에서 우리들의 문제를 제대로 보도해주었더라면 아예 우리가 시위를 할 필요도 없었어. 특히 보수 언론들은 평소에 노무현 정권을 집요하게 비난하고 있지 않냐? 그런 태도로 우리의 문제를 끈질기게 보도해 준다면 우리가 길거리로 나설 필요가 아예 없어, 우리도 편하고 말이야. 보수 언론은 노무현 정권의 다른 정책은 다 까거나 씹어도 한미FTA만은 칭찬하고 있어, 한마디로 웃긴 얘기야. 보수 언론은 ‘언론을 통한 폭력’을 우리에게 행사하고 있는 셈이지.

현 하지만 일단 언론에 의해 ‘폭력적’이라고 낙인 찍히면 오히려 결과는 더 안 좋은 것 아니냐? 위 통계의 53.6% 국민들이 보수 언론의 소위 ‘폭력 시위’에 관한 보도를 읽는다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두더지 53.6%라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일 따름이지. 또 설령 위 통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28.9%에 불과해. 게다가 보수 언론이 속으로 편들고 있는 계층은 1.5%의 최상층 국민이야. 바로 그 1.5% 안팎의 최상층이 한국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어. 흔히 말하는 불로소득 계층이지.

현 으음. 그러고 보니 성경 말씀이 생각나는구나. 신약 <데살로니카 후서> 3장 10절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If any would not work, neither should he eat)”고 되어 있지. 하지만 한국의 일하지 않는 자들은 대부분의 국부(國富)를 손에 움켜쥐고 있는 거로구나.

두더지 그리고 민간 시위를 진압하는 군대를 해체해야 해.

현 그건 무슨 소리야?

두더지 전투경찰은 말만 경찰이지. 실제로는 국방의 의무 때문에 동원되어 있는 젊은이들이잖아? 옷만 경찰복을 입었다 뿐이지 실제로는 군인이란 말이야. 전투경찰은 전두환 시대의 유물이니까 없애야 할 제도야. 군인이 민간인의 시위를 진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야. 한나라당도 4ㆍ19와 5ㆍ16 그리고 전두환 집단의 쿠데타에 대한 역사적 입장을 분명히 밝혔으니까 전투경찰 제도의 해체를 주장해야 논리적으로 맞는 거야.

현 듣고 보니 그러네. 사실상의 군인들이 지하철 입구와 거리의 인도와 건널목을 가로막고 있는 거니 참 꼴이 우습구나. 그렇지만 어쨌든 간에, 대화로 해결해야 하지 않겠니?

두더지 우리도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만 정부나 재벌이나 보수 정당들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아. 그런데, 우리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거리로 나서는 거지. 또 우리의 주장을 막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고 말이야.

현 하기야, 대화(conversation)의 라틴어 어원 conversatio는 원래 ‘잦은 체류, 머묾 혹은 존속, 한 장소에 머무름’ 또는 ‘교제 혹은 소통’을 의미하지. 또 영어 dialogue도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걸 뜻하는 거고…. 그렇지만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다 우리 손으로 뽑은 건데 이제 와서 어쩌겠니? 다 누워서 침 뱉기지.

두더지 야당인 한나라당이야 원래 그렇다 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문제야. 대다수 국민들이 다 힘든데, 상황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집권 여당으로서 대안과 정책을 내놔야지. 다음 대통령 선거만을 의식해서 서로 찢어질 궁리만 하고 있으니 말이야.

현 너의 대안은 뭐니?

두더지 열린우리당이 찢어지더라도 정치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찢어져야겠지. 열린우리당 의원 중에서도 부동산 문제라든가 재벌 문제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으로 가는 게 맞고…. 지금 상태로 소위 유력한 대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찢어지면 ‘닫힌당’과 ‘너희당’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어.

현 한국의 수출액은 세계 12위지만 정치는 60위 바깥이란 얘기로구나. 하지만 올해만 살고 말 것도 아니고 이번 정권에서만 살고 말 것도 아니니까 몸을 생각해가면서 싸우거라. 특히 감기 조심하고.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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