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선택권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일반계 고교 진학 과정에서 거주지와 성적 등을 고려하여 일방적으로 학교를 배정하던 방식을 버리고, 이르면 2010학년도부터 학생들의 학교 선택을 제한적이나마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의 노력을 촉구하면서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취지에 공감할 수 있지만, 계획이 다듬어져야 할 구석은 아직 많다.
우선 계획대로라면 선택권이 어떻게 확대될지 보자. 현재는 학교 근처로 이사하는 것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유일한 방법일 터이므로, 부담 없이 이사할 수 있는 여건에 있는 학생들만 선택권을 누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기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웃 학교라 하더라도 배정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사할 여력은 없지만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멀리 있는 학교에 진학할 의사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희망을 준다. 운이 좋으면 희망하는 학교에 배정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계획은 ‘가진 자’들의 이익을 줄이고 ‘못 가진 자’의 지분을 늘이는 효과를 내게 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배정될 수 있을까? 공개된 자료로 대략 추산해보면 50% 남짓한 정도가 될 듯하다. 2지망 학교에 배정된 경우에도 만족한다고 볼 때 그렇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고 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학생들의 지망이 모두 ‘적극적인’ 것이었을 때만 타당하다. 원하는 학교가 없지만 ‘나쁜’ 학교 배정을 면하기 위해 ‘소극적인’ 선택을 한다면, 50% 이상 원하는 대로 배정했다는 성과는 무의미하다.
다섯 중 하나라는 ‘기피학교’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이 학교들을 방치한다면 선택권 확대의 의의는 크게 준다. 새로운 제도에서 기피학교들이 손가락질 당하는 ‘낙인효과’를 극복하고 선택받을 수 있는 학교로 회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잠재력을 지녔다면 이미 기피학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학교들을 퇴출시키게 될 공산이 큰데, 이 경우 전체의 20% 정도 정원을 나머지 80% 학교로 떠넘겨야 한다. 이 경우 서울의 고등학교 교육 여건을 크게 악화될 것이다.
새로운 제도 아래 학교들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에도 조건이 따른다. 학교가 학생 유인을 위해 경쟁해야 할 상황이 된다고 해서 모든 학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다.
학교 선택 준거가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노력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학생들이 주목하는 요소에 학교들이 매달릴 것이다. 짐작하듯 대입성적이 관건이 된다면 학교들은 입시 준비에 더 매달려야 할 것이다. 바람직한 현상은 못 된다.
요컨대 학교 우열을 가르는 잣대는 ‘인기도’가 되는 셈인데, 그 인기도를 무엇이 결정하는지 확연하게는 누구도 모른다. 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면(이 가능성은 매우 큰데), 선택은 유언비어와 마케팅 경쟁 등으로 혼탁해질 것이다. 학교들도 인기를 위해 방향 없이 암중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인기가 학교 교육의 질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학교간 경쟁은 공허한 일이 된다. 이 점에서 세속적 평판에 연연하지 않고 나름의 교육이념을 추구하려는 학교들은 이번 계획에서도 외면당한 셈이다. 궁극적으로 학교 선택권 확대는 그 선택 행위가 학교의 ‘교육철학’을 겨냥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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