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의 전면에 복귀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정치에 신경을 쓰느라고 정작 국정은 챙기지 않아 국정혼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들이 생겨나고 있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사태가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제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을 벌려 사고를 치지 않고 조용히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일을 벌일 정신이 없게 신경을 써야 할 소일거리인 정치투쟁이 본격화됐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노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복귀한 것은 지난 달 말의 임기단축시사 발언을 통해서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을 중심으로 한 통합신당 움직임과 관련해 탈당가능성도 시사했다. “당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4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뒤 당을 지킬 것이라며 전면전을 선언함으로써 여권의 권력투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 같은 권력투쟁에서 누가 이기든 새 당이 생겨나고 사실상 노 대통령이 탈당을 한 것과 마찬가지의 사태가 일어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노 대통령의 지적대로 왜 우리의 대통령들은 임기 말이면 줄줄이 탈당을 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의 경우 관권선거의 기억 때문에 야당이 공정선거를 위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당의 압박에 의해 탈당을 하는 것은 웬일인가? 이 경우는 우리의 대통령들이 인기가 없어 대통령의 탈당이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여당이 탈당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인기가 없지만 공화당에서 탈당을 하라고 압박을 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임기 말에 줄줄이 탈당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당이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자신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4번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 사실은 자신의 업보이자 자업자득이라는 점이다.
노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당적을 포기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들이 대통령이 된 뒤, 또는 되는 과정에서 기존 정당을 깨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정당을 사실상 개인의 사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경우 양김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열린우리당을 사당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과감하게 당정분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을 만듦으로써 정권이 바뀌면 새 당이 생기는 악습은 그대로 답습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아무리 당정분리를 해도 열린우리당은 노무현당이라는 족쇄를 벗어날 수 없는 원죄가 생긴 것이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개인적으로 이 지면의 ‘개혁신당의 빛과 그림자’라는 글(2003년 5월 19일자)을 통해 한국정치의 현실을 고려할 때 “탈사당정치, 탈지역정당을 목표로 한 신당의 출현은 시대적 요구”이지만 “정권만 바뀌면 새로운 정당이 생기는 관행과 단절을 하고 정당이 제도화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 어느 정당개혁보다도 더 큰 정당개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고 신당을 만드는 경우 “5년 뒤에 현재 추진 중인 신당을 깨는 또 다른 신당이 나오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나의 이 같은 경고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다. 여야 대권주자들 역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정치적 필요성에서 대선국면이나 대선 후 새로 정당을 만드는 경우 이 같은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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