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가 관료주의의 늪에 빠진 유엔을 개혁할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일부 회의적 시각이 맴돌고 있던 유엔에서 반기문 차기 사무총장이 뛰어난 재치와 유머로 강한 자신감을 과시했다.
무대는 8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출입기자단(UNCA) 송년 만찬장. 반 차기총장은 유엔 개혁 의지를 재기 넘치는 연설과 캐럴 송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각국 외교사절과 기자, 유엔 직원들을 매료시켰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기립박수 속에 연단에 오른 반 차기총장은 먼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연설하는 건 프랭크 시나트라 뒤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재담은 코피 아난 현 총장에 대한 찬사로 이어졌다. “아난 총장의 뒤를 이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잘 다듬어진 턱수염을 길러야 할까. 더운 나라에 갈 때는 사파리 재킷을 입을까. 검은색 터틀넥을 살까. 결론은 아난 총장의 코디 팀을 고용하는 것.”
하지만 이날 연설의 주 청중은 총장에 대한 평가를 좌우하며 길게는 30년 이상, 적어도 10년 이상 유엔만 취재해온 베테랑 기자가 즐비한 UNCA. 반 차기총장은 “서울에선 ‘기름장어’, 뉴욕에서는 ‘테프론 외교관’이란 별명을 기자들에게 얻었다”며 “표현은 다르지만 뜻은 내가 원하면 비밀요원처럼 능란하게 당신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해 의미심장한 폭소를 끌어냈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나의 행동은 절대 미끈거리지 않을 것”이라며 “‘언행일치’를 좌우명으로 삼아 사무총장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언론을 진지하게 대할 것임을 강조했다.
연설의 대미를 장식한 유머는 크리스마스 캐럴인 ‘울면 안돼(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반 차기 총장은 “나는 리스트를 만들어 두 번씩 확인해가며, 누가 개구장이인지 누가 착한 아이인지 찾아내지…반기문이 마을에 온다네”라고 바꾼 가사로 직접 노래를 부르며 유엔 사무국 개혁을 예고했다.
뉴욕타임스는 9일자 ‘토요 프로필(Saturday Profile)’란에 반 차기총장을 전면에 걸쳐 소개했다. 이 신문은 “선거기간 중 겸손한 태도 때문에 사무총장에 적합한 인물이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며 “이에 대해 반 차기총장은 겸손은 몸가짐의 문제이지 결단력이나 리더십의 부족을 뜻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욕=장인철 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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