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당국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일심회 조직원이 남한에 통일전선체 구축하기 위해 3,4개의 하부 조직망 결성을 추진한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일심회 사건을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조직원 5명 모두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송찬엽)는 8일 일심회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조직총책인 장민호(44ㆍ미국명 마이클 장)씨와 조직원 손정목(42)ㆍ이정훈(43)ㆍ이진강(43)ㆍ최기영(41)씨를 국가보안법상의 목적수행(간첩), 특수잠입ㆍ탈출, 이적단체 구성, 회합ㆍ통신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장씨는 ‘남한 내에 통일사업 조직을 꾸리라’는 북한 대외연락부의 지령에 2002년 1월 고교ㆍ대학 동문이거나 사업상 알게 된 손씨 등을 잇따라 포섭해 일심회를 결성했다. 일심회는 장씨가 최상부 조직원으로 지휘를 하고 손씨와 두 이씨 등 3명이 하부조직원으로 활동했으며 조직 이름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통일을 이룩하자’는 의미라고 검찰은 밝혔다.
이들은 수십회에 걸쳐 주한미군 재배치 현황, 민노당 당직자 350여명의 성향분석 자료, 2004년 총선 및 올해 지방선거 동향 등을 해외에 계정을 둔 이메일을 통해 북한에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심회는 이정훈씨가 2002년 12월 ‘선군정치 동지회’와 ‘8.25동지회’를, 이진강씨가 2005년 11월 ‘백두회’를 각각 결성하는 등 하부조직망을 구축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지난해 손씨가 하부조직망으로 포섭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이 특정 시민단체에서 활동 중인 환경운동가 등을 하부 조직원으로 포섭하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한미 FTA 협상,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등을 반미운동에 직ㆍ간접적으로 활용하려 한 정황도 포착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검찰, 일심회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 사건" 규정
신 공안정국 비화 논란까지 불렀던 일심회 사건은 조직원 5명이 연루된 간첩사건으로 일단 매듭지어졌다. 검찰은 8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간첩단’이란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계보도까지 그려가면서 일심회의 조직성을 부각시켰다. 일정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지령과 보고를 반복한 이전의 간첩단과 성격이 다르지 않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386세대’의 운동권들이 연루된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 정치권이나 청와대에 포진한 다른 386 출신 인사로 수사가 확대될지에 관심이 쏠렸다. 실제로 일심회 조직원은 과거 1980년대 대학 총학생회에서 중추 역할을 했고 최근까지도 당시 운동권 선ㆍ후배, 동료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386세대를 매개로 정당과 시민단체에 침투했다는 점에서 검찰은 이 사건을 2000년 6·15 공동선언 후 최대 간첩사건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검찰의 발표에는 추가 연루자에 대한 수사 결과가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일심회의 하부조직망에 대해 국정원과 함께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앞으로 얼마만큼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 관계자들도 과거 공안사건과 달리 법원이 인정할 만큼의 확실한 물증이 나오지 않는 이상 섣불리 수사 대상을 확대하지는 않을 분위기이다. 검찰의 공안 핵심 간부는 수사 초기부터 “일심회 사건에서 조직원 5명 외에 추가로 나올 게 없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긋기도 했다. 또 이번 사건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온 김승규 전 국가정보원장이 최근 인사에서 물러남으로써 수사가 탄력을 받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김만복 신임 국정원장은 이 점을 의식, 철저한 수사를 다짐했지만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는 당초 김 전 원장이 ‘간첩단’운운하며 보여준 사건의 밑그림에서 크게 후퇴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일심회 조직원이 정부와 정계에 진출한 386 출신들과 과거에 친분이 있었다고 해도 그동안 걸어온 길과 사상 노선이 다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이들을 상대로 국가기밀을 수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들은 북한에서 전문적인 공작원 훈련을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수사와 재판 과정도 평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진강ㆍ손정목씨는 일심회 총책 장민호씨와 주고받은 대북 보고문건 때문에 장씨와 연계성을 시인했지만, 민노당원인 최기영ㆍ이정훈씨는 일심회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이 일심회 조직을 통해 공당인 민노당과 일부 시민단체에 침투하려 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국가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386 세대 중에 여전히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북한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 인사들이 적지 않으며, 북한은 이 틈새를 이용해 통일전선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의구심은 이번 사건으로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또 일심회가 환경운동가를 하부 조직원으로 포섭하려 하고 시민단체의 반미활동에도 직ㆍ간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보수단체들이 이들 진보단체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더욱 죌 여지도 커졌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남은 쟁점은
검찰은 8일 일심회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직원 5명을 ‘간첩단’이라고 못박지 않았다. 일심회의 조직 성격에 대해서도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결성된 이적단체라고 규정했다. 대한민국의 전복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승규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 사건 수사 초기 ‘간첩단’이라고 단언했던 것과는 다른 수사 결과다.
그러나 검찰은 5명 모두에게 국가보안법위반(목적수행) 혐의를 적용함으로써 이들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국가기밀을 북한에 보고하는 ‘간첩행위’를 했음을 분명히 했다. 검찰은 일심회가 ‘단선연계 및 복선포치형 조직’임을 강조, 구성원들이 강령과 조직체계를 갖춘 사실상 ‘간첩단’임을 부각했다. 하지만 변호인들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들이 간첩이 아니며 북에 넘어간 내용도 국가 기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등 수사 내용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간첩죄 공방 계속될 듯
공방의 핵심은 일심회 조직원들이 북에 보냈다는 문서의 내용이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국가기밀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어야 하며, 내용이 누설될 경우 국가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이 기준으로 명확히 구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례로 대법원은 97년 국내 총선 관련 정당 및 재야단체의 입장, 1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대통령 후보들의 성향 등에 대해서는 국가 기밀이 아니라고 판단한 반면 재야 인사들의 구체적 동향, 민족민주 평화통일 중앙회의 의장 이름, 범민족연합의 95년 사업계획안 등은 국가기밀로 판단했었다.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피의자들이 북측에 보고한 내용 모두를 기소한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례에 맞춰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것을 골라 기소했다”며 유죄 입증을 자신했다. 하지만 변호인들은 “기소는 검찰의 의견에 불과하다”며 “일심회가 실체가 있는지, 간첩혐의가 정당한지 등에 대해 재판 과정을 통해 밝혀내겠다”고 주장했다.
피의자 접견 놓고 신경전
검찰은 이례적으로 중간수사 발표문 후반부에 ‘변호인들의 접견권 남용문제’를 언급하며 “변호인의 과도한 접견권이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변호인단이 피의자 검거 직후부터 한 피의자를 릴레이식으로 접견하고 변호사 1명이 모든 피의자를 순서대로 접견하면서 증거를 인멸하려고 해 실체적 진실규명에 방해가 됐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외국의 입법례를 검토해 간첩사건이나 조직폭력사건 등의 경우 변호인의 접견을 배제, 제한하는 내용으로 입법을 건의할 방침이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주장하는 수사방해는 ‘말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국정원은 피의자들을 매일 오전8시부터 밤9시까지 12,13시간 동안 조사했고 변호인단은 2일에 1번 40분간 접견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는 국정원 조사시간의 5%도 안된다”고 해명했다. 검찰의 묵비권 행사권유로 수사방해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행 국정원, 검찰에서도 피의자 조사시 ‘묵비권고지’는 의무다. 변호인의 묵비권 권유만 문제삼는 것은 수사 편의주의적이고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박상진기자 okome@hk.co.kr
대북보고 내용은
검찰ㆍ국정원은 일심회 총책 장민호씨에게서 압수한 USB(휴대용 저장장치), 컴퓨터 등 저장장치 12종 1,097점을 샅샅이 뒤져 이들이 북과 주고받은 문건을 찾아 냈다. 이들은 북으로부터 ▦포섭 대상자의 신원 사항 통보 ▦시민단체 배후 조종 기도 ▦반미운동 개입 등을 지시 받았고, 북측에 ▦민주노동당 방북단과 주요 당직자 344명 성향 분석자료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동향 ▦한미FTA저지, 평택미군기지 이전 관련 등 반미투쟁 동향을 보고했다.
눈에 띄는 문구도 여럿 있었다. 장씨는 대북 보고문에 ‘오직 장군님의 안위와 건강만을 생각합니다’는 찬양문구를 자주 썼고, 북한을 ‘조국’으로, 대한민국을 ‘적후(敵後)’로 표현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준엄히 자아비판하며 반드시 시민사회 부문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영도를 구현하겠습니다”고 충성맹세도 했다. 최기영씨는 사상 교육을 받은 후 역시 “장군님의 선군영도가 유일한 정답”이라고 서약했다.
또한 장씨가 북에 보낸 보고문 중엔 2002년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문건도 들어있어 수사팀을 놀라게 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선 당시 노대통령 당선을 선거일 1개월 전에 정확하게 예측해 북에 보고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으로 장씨는 조국통일상과 노력훈장, 손정목씨은 조국 통일상, 이정훈 이진강씨는 노력훈장을 북으로부터 받았으며 공작금 2만여달러와 1,900만원도 받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간첩 활동시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터무니 없이 적은 공작금은 북한의 경제난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과거 냉전시기 수십만 달러를 받아 쓰던 남파간첩들의 공작금 규모에 비해 너무 초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정훈씨는 2,000달러, 이진강씨는 3,000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때문에 장씨가 북에 보낸 보고 문건에는 수 차례 ‘회원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공작금을 추가지원 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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