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을 보면서 <삼국지> 를 생각한다. 40% 가까운 지지로 대세론을 확장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위(魏)를 연상케 한다. 그가 조조와 같다는 것은 아니지만. 탄탄한 기반으로 영광을 지키려는 박근혜 전 대표는 오(吳)를 연상케 한다. 그를 손권에 비유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민심을 부둥켜 안고 바닥을 훑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촉(蜀)을 연상케 한다. 삼국지>
그가 유비와 비슷한 성품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3국을 통일한 것은, 세 사람 중의 승자는, 위ㆍ오ㆍ촉도 아니었으며, 조조 손권 유비는 더욱 아니었다. 사마의가 만든 진(晉)의 역사가 그들을 평정했다.
한나라당 '빅3'가 서서히 갈등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도탄(塗炭)에 빠진 국민을 위하여" 혹은 "영광의 왕조를 복원하기 위하여"라는 명분은 같지만 방법론 차이로 전선이 형성됐다. '보다 나은 나'를 강조하기 위해 남의 딴지를 걸거나 상대방 의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고 있다.
박씨는 "밀어붙이는 것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불도저 추진력'에 제어를 걸었다. 손씨는 "영남지역 수구꼴통 이미지로는 국가경영이 어렵다"며 기득 세력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씨는 "신경 안 쓴다"고 일축하면서도 내부의 '네거티브 요소'를 청소하느라 여념이 없다.
● <삼국지> 의 승자는 역사일 뿐 삼국지>
한나라당을 보며 삼국지를 생각한 것은 두 가지다. '빅3'의 기반과 성향, 현재의 행태가 위ㆍ오ㆍ촉 이미지와 그럴듯하게 오버랩됐다. 또 당대의 '빅3'였던 조조ㆍ손권ㆍ유비는 전장에서 몰락하고, 한참 후 사마염이라는 인물이 3국을 통일하고 천하의 대권을 잡은 역사 때문이다. 진을 세운 사마염은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의를 쫓았다'는 전설의 피해자인 그 사마의의 손자다.
역사서 진수(陳壽)의 <삼국지> 를 훗날 유교적 관점에서 소설로 만든 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이며, 유비에게 적통성을 두고 그 3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박종화씨나 정비석씨 소설의 원전이 됐다. 진의 역사를 토대로 조조 중심으로 구성한 소설은 일본의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것이 대표적이며 이를 인용한 <만화 고우영 삼국지> 가 우리 곁에 있었다. 만화> 삼국지연의> 삼국지>
보수세력의 간판인 이문열씨의 소설이 요시카와 에이지와 궤를 같이하고, 진보문인의 상징인 황석영씨가 삼국지연의의 관점에 동조하고 있음은 다소 아이러니지만 "의리를 지키고 최선을 다하라"는 삼국지의 메시지에는 두 작가가 공감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빅3'에게 고대 3국의 역사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며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위ㆍ오ㆍ촉은 무능한 황실과 측근들의 부패로 일반 백성들의 황감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지역성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전통을 제조하는 편의적 명분에 빠졌다.
다른 세력들을 혼자 상대할 수 있다고 과신하고 힘과 대세로 밀어붙였던 위(魏), 자신의 영역을 한 치도 상대에게 내주지 않고 기름진 땅과 세습적 권위를 보존했던 오(吳), 민심 탐방으로 그들의 칭송은 받았으나 대세에 밀려 중원에 이르지도 못했던 촉(蜀), 이들 모두가 역사의 당위라는 흐름에 밀려 '이름을 날렸던 영웅'으로 머물렀다.
그들은 그들의 군사분계선을 의식하지 못했던, 그러나 전장과 전투에 신물을 냈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황석영씨는 "삼국지의 주인공은 없다. 모두가 실패했다. 성공한 것은 역사일 뿐이다"라고 했다. 이명박씨 박근혜씨 손학규씨에게 역사에 대적할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 여권의 행태는 <초한지> 모습 초한지>
마찬가지로 여권의 행태를 보면서 <초한지> 를 생각한다. '건곤일척'을 앞둔 그들의 전선 만들기가 그 때의 장면과 그럴 듯하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초이고 어느 쪽이 한인가 물을 필요가 없다. 항우와 유방의 역할은 누구에게 비유되는지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양측이 '모 아니면 도' 형태의 초한지 전투에 이미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초한지>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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