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연구그룹(ISG)의 보고서 공개를 계기로 이라크전 정책수정 압력이 가중되고 있으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보고서의 핵심적 권고내용에 대해 공공연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보고서가 나온 지 하루만인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2008년 초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이란 및 시리아와의 대화 등 ISG 보고서의 핵심 권고사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미군 철수 방안에 대해선 “이라크에서 미군을 최대한 빨리 철수시키고 싶지만 군대의 이동은 탄력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면서 “현지 병력수준의 변경은 현장 지휘관들의 건의를 받아 들여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얘기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 및 시리아와의 대화 방안에 대해서도 상대국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이런저런 조건을 붙였다. 조건부 수용이라기 보다는 거부에 가까웠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은 미국과 상대하고 싶다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시리아에 대해선 “시리아가 우리와 대화하고 싶다면 레바논 정부 흔들기를 멈추고 이라크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무기와 자금 공급도 중단해야 한다”면서 “테러 단체들에 대한 은신처 제공도 해서는 안 된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부시 대통령은 다만 이라크 상황이 심각하며 악화하고 있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좀 더 빨리 성공할 줄 알았는데 성공 속도에 실망했다”면서 “국민들은 목표 달성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해주길 바라고 있고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마지못해 물러섰다.
부시 대통령은 나아가 향후 7~10일 이내에 국무부, 국방부, 국가안보회의(NSC)로부터도 이라크전 관련 보고서를 제출 받을 예정이라면서 ISG 보고서는 “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 절하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보고서를 취합한 뒤 연내에 이라크전 정책 수정에 관련된 대국민 연설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ISG 보고서와 영미 정상회담 이후 중동지역의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상에 대한 영미의 중재노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블레어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곧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 평화협상 진전을 위한 중재노력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내년 초 중동을 방문, 이 같은 중재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그러나 이라크 사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계 시킨 ISG 보고서를 반박하고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은 아직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았다며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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