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국선변호 등 신선한 행보도
역대 대법관들은 퇴임 후 정계로 진출하거나 장관 등 다른 공직을 맡은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변호사 개업을 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본보 취재팀이 현역을 제외한 역대 대법관 113명의 퇴임 이후 진출분야를 조사한 결과, ▲변호사 75명 ▲정계 15명 ▲학계 3명 ▲헌법재판소장 2명 ▲기타 18명 등이었다.
하지만 대법관들의 변호사 개업에 대해선 곱지않은 시선도 많다. 이들이 법모를 벗자마자 대법원 사건을 70% 가량 싹쓸이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관시절 평생 지키려 노력했던 ‘양심’이나 ‘소신’과는 거리가 있는 행보이다.
그래서 최근엔 직접 재판정에 서거나 서류에 이름을 올리는 단독 개업보다 품위를 지키며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로펌 고문 등이 인기다. 이영섭 전 대법원장은 퇴임 이후 ‘동대문합동 법률사무소’를 만들어 주재황씨 등 퇴임 대법관들과 사랑방 삼아 공증업무 등을 하며 소일하기도 했으나 로펌행이 일반화한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이다.
오랜 조직 생활에 염증을 느껴 로펌행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최근 단독 개업한 한 전직 대법관은 “인생에 한번쯤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세태에 비추면 최근 퇴임한 조무제 배기원 전 대법관의 행보는 신선하다. ‘청빈 법관’으로 유명한 조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모교인 부산 동아대 석좌교수를 맡아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배 전 대법관 역시 모교인 영남대의 석좌교수를 맡았다.
1971년 국가배상법에 대해 위헌 표결을 했다가 73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나항윤 유재방 전 대법관은 ‘국선변호’ 활동으로 유명했다. 두 사람은 옷을 벗은 후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10년 이상 무료법률상담과 매년 50~70건의 국선변호를 맡아 85년 인권선언일 기념 훈장을 받았다.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73년 ‘컴퓨터로 양형 통계를 계산해 재판에 활용하자’는 논문을 발표, 주목을 끌었던 고 김윤행 전 대법관 집안은 3대에 걸쳐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하고 부친인 김 전 대법관을 도와 논문을 쓰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장남 김성인씨는 어느덧 중견교수(고려대 산업공학과)가 됐다. 김 교수의 가장 큰 소망은 현재 공익법무관인 아들이 복무를 마치면 함께 완결판 ‘컴퓨터 양형프로그램’을 만들어 부친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81~86년 대법관을 지낸 신정철씨는 현재 부인과 함께 충북 진천에서 대규모 농장을 일구며 여생을 즐기고 있다. 81~85년 ‘정권에 예속된 사법부’ 수장을 지낸 유태흥 전 대법원장은 건강 악화로 고통을 겪으며 우울한 말년을 보내다 지난해 1월 한강에 투신자살해 충격을 줬다. 민문기 전 대법관과 소수의견 수위를 다퉜던 임항준 전 대법관은 현재 캐나다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
고재학(팀장)·이태희·김용식·안형영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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