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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존의 상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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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존의 상식에 대해

입력
2006.12.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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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집에 있노라면 허기 지듯 사람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친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겠지만, 전화해서 약속을 정하는 과정을 복잡하게 여기는 나는 그저 허기가 몰려오면 집 가까이의 카페로 나간다. 익명의 누군가들 틈에 앉아 책을 읽거나 창밖의 풍경을 읽으면서 고독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삶의 전 영역에 배려심이 없는 나라

그러나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자기 영역이 침해받는 걸 싫어하는 모순적인 현대인이 흔히 그렇듯 그 익명의 공간과 모씨는 절망의 대상으로 바뀌곤 한다. 허기 끝에 기름진 음식을 먹곤 속이 더부룩해지듯, 데시벨을 조종하지 못하는 큰소리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금방 사람들이 미워지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짜증들, 음악이 나오는 공간은 왜 한결같이 시끄러운 음악만 틀어주는가. 왜 사람들은 옆 테이블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말하는가.

카페만이 아니다. 지하철을 타도 옆자리에서 흘러나오는 MP3의 소음에 귀가 간지럽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지만 아무도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갈길 바쁜 차들이 멈춰주지 않아 도로 한복판에 바보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여러 번이다.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법한 일이지만 며칠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모처럼 찾은 조용한 카페에서 한가롭게 햇볕을 즐기는데, 두 명의 주부가 아이들과 들어오더니 그 공간을 순식간에 시장판으로 만들었다. 여러 테이블 건너 있건만 낭랑하게 들려오는 그 주부들의 목소리도 놀라웠지만 두 명의 아이가 놀이터에라도 온 듯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데도 내내 방관하는 것이었다.

그 상황의 클라이맥스는 엄마 중 한 명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그 강렬한 모성에 적개심이 솟구쳐 올라 머리가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아니, 사랑은 그게 아니야. 당신이 정말 아이를 사랑한다면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놀이터에 갔어야지. 혹은 카페엘 오고 싶다면 어른들의 공간에서 아이가 조용하게 노는 법 정도는 가르쳐 주었어야지. 당신은 자신밖에 모르고, 아이조차 그런 사람으로 키우는 중이야.

● 모듬살이의 지혜와 매너를 갖자

출생률을 높이려는 보건복지부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삶의 전 영역에 이렇게 배려심이 없는 나라에서 왜 사람들이 2세를 낳고 길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출생률을 높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들이 쾌적하게 살 만한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먼저 아닌가. 국민의 도덕적 인품을 높이는 것이야 한 순간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함께 살아가는 모듬살이의 지혜와 매너 정도는 노력하기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토요일 아침부터 짜증 섞인 글을 보여주는 것은 독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일상의 소소한 영역에서부터 공존의 상식과 매너가 성립되지 않는 한 자신밖에 모르는 저 정치적 분쟁과 난동 역시 영원히 종식되지 않을 듯하다.

김명화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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