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었던 강정구 교수는 지난 5월 1심 판결에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인 북한에 대한 찬양ㆍ고무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나는 이 판결문을 유심히 읽어보면서 참으로 미묘한 시기에 판결을 해야 했던 재판부 역시 적지 않은 갈등을 느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32쪽에 달하는 판결문 끝에 든 집행유예의 근거들을 짚어보면 알 수 있다.
● 그의 어투보다는 관점을 봐야
1심 재판부는 우리나라가 그 어떤 사상적 주장이나 표현의 해악도 정당성 경쟁을 통해 시정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고, 피고인의 주장 정도로는 국가의 안위가 위협받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즉 강 교수 건은 이른바 사상범 처벌의 국제적 기준인 '명시적 위협 현존의 원칙'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강 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정도로도 그에 대한 "처벌의 상징성"과 "신분적 불이익"을 입히는데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1심에서 바로 이렇게 유죄를 선고하는 데 적용한 증거와 논거들이다.
1심 판결은 강 교수의 언동들이 폭력을 선동하거나 그 어떤 체제 위협 효과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언동들이 근본적으로 북한의 체제 정통성을 편향적으로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님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유죄의 증거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예외도 없이, 강 교수의 학문적 연구물이나 그와 관련된 대중적 기고문들이다.
1심 판결은 강 교수가 이런 글들에서 "대한민국 또는 미국에 대하여는 '불법개입' '불법점거' '원수' '전쟁광' '학살책임자' 등으로 표현하고 북한에 대하여는 '민족정통성' '정당한 월선' '합당' 등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내용이나 표현 방식에 있어 학자의 입장에서 냉철하고 학문적인 논의를
끌어내기 위한 화두"를 던진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동조하거나 친북적인 주장을 했다"고 단정했고, 바로 그 때문에 국가보안법상 찬양ㆍ고무죄를 범했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살기마저 느껴지는 보수적 여론몰이에 둘러싸여 판결해야 하는 재판부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강 교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학문이론적으로 도저히 간과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1심 판결은 한 연구자가 취하는 이른바 '발견을 위한 관점'이 연구자의 연구 및 자기표현 활동에 있어 생명과 같은 것임을 완전히 간과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문제를 학문적으로 푸는 데 '모든'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수없이 많은 지식은 오히려 문제를 애매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문제와 관련하여 그 해법을 보여주는 그런 지식인데, 이때 어떤 특정 관점을 취하면 사태를 더 잘 파악하는 수가 있다. 즉 문제에 따라서는, 모든 것을 알겠다는 전체론보다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뾰족한 관점이 지식 생산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강 교수에게 '냉전 성역 허물기', 그것도 '남한'에 관한 것은 그의 학문적 생산력을 지탱하는 인식발견적 관점이다. 강 교수가 북한의 올바른 이해를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북한상'에 얽혀 있는 '남한의 편견'을 깨는데 중점이 있다.
● 21세기판 갱유는 범하지 말자
내 생각으로 직업의식에 투철한 공정한 판결이라면 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물에 나오는 '어투'를 논거로 삼지 말았어야 했다. 학문은 단편적으로 읽혀지는 내용이나 표현이 아니라 그것들을 일관되게 엮어내는 문제의식, 자료분류체계, 논증, 이론, 그리고 다른 학문적 인식과의 정합성 등으로 이루어지는 지적 체계이다.
강 교수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말투를 쓰긴 했지만 그것은 '북한에 동조하거나 친북적 주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남한 안의 냉전 성역'을 짚어나간 것이다. 강 교수의 학문, 내 식대로 표현하면, '강정구식 탈냉전학'은 북한 아닌 남한이 연구대상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시민이다.
만약 말투 정도를 갖고 항소심에서도 강 교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직위해제 상태의 강 교수에게서 아예 교수직을 박탈할 빌미가 마련된다. 정년이 4년도 안 남은 한 학자를 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내몬다면 사법부는 21세기판 갱유(坑儒)를 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정구 옹호가 전보다 더 어려워진 냉랭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를 악물고 주장한다. 학문적 양식으로나 국가보안법으로나 강정구는 무죄라고.
홍윤기ㆍ동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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