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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누가 진짜 싸이보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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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누가 진짜 싸이보그인가

입력
2006.12.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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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자신이 싸이보그(cyborg, 인조인간)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다. 한낱 몽상에 불과한 소리가 아니다. 차영군은(임수정)은 정신분열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망상의 세계에 머물기를 고집한다. 어려운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그냥 그래야 할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할머니로 인해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어머니가 요양소에 강제로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틀니가 없으면 아무 것도 먹지 못할 텐데' 라고 걱정하며 어떻게 하든 할머니에게 그것을 전해 주고, 강제로 할머니를 데려간 하얀 맨(의사, 간호사)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간절한 욕망에 사로 잡힌다. 그렇다고 미칠 것까지 있나 하겠지만 어쩌랴. 정신의 한계도 인간에 따라 다른 것을.

우리 역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을 때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미치겠다' 고. 차영군으로서는 할머니가 불쌍해 미치겠는데, 자신은 아무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돌파구를 찾으려 발버둥치다 정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만다. '난 이제부터 싸이보그야. 나의 열 손가락은 모두 총이야. 전기에너지를 받아서 그 총을 난사해 하얀 맨을 모두 죽이고 할머니를 구해야지. 싸이보그는 다 이긴다. 너는 그것도 모르니. 나는 싸이보그니까, 이제부터 나의 에너지원은 식량이 아니라 전기야.'

모두 식당에서 밥 먹을 때, 그녀는 작은 건전지를 꺼내 혀에 댄다. 싸이보그니까 대화 상대도 인간이 아닌 기계다. 소통의 도구이자 할머니란 존재의 상징인 틀니를 끼고 음료자판기와 이야기하고, 복도의 전구가 아무 대답이 없자 그럼 병실에 있는 형광등은 붙임성이 있을까 기대한다. 자신의 행동강령 역시 어머니가 집어 던져 고장 난 할머니가 듣던 라디오로부터 받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는 겉만 보면 순간순간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넌센스 코미디에 불과하다. 차영군의 주변 인물들은 처음부터 관객들을 보기 좋게 속인다. 영군이 병원에 들어 온 날, 한 아주머니가 영군에게 박일순(정지훈, 가수 비)은 항문을 꿰맸고, 덕천(오달수)은 송아지를 사랑한 남자라고 태연스럽게 설명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주머니는 작화(作話)병 환자다.

이때부터 그들 행동 하나하나가 어디까지 정상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지 더욱 헛갈린다. 그들은 우리를 쉽게 속인다. 왜냐하면 코미디 프로와 달리 영화는 어느 것이 정상이고, 어느 것이 '망상'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우리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또 하나의 세상이자 우주가 있다. 그것들을 그저 미친 모습이라고 여기며 웃어넘기고 말아야 할까. <싸이보그는 괜찮아> 속으로 아주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뜻밖의 소중한 것을 발견한다. 차영군이 '나도 한 개만 있었으면' 하는 존재의 목적, 즉 인간의 조건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역설적으로 '싸이보그의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말한다.

그 으뜸은 동정심이며 그 다음은 슬픔에 잠기는 것, 설레임,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죄책감, 감사하는 마음이다. 영군은 이 일곱 가지를 없애려 “제발 동정심을 훔쳐가 주세요” “슬픔에 잠기면 안돼” “감사 드리고 싶은데 감사하는 마음이 금지된 처지라”고 애원한다. 그래야 잔인하고 내정한 존재가 돼 인간에게 복수할 수 있으니까.

그녀의 이런 태도를 어이 없어 하는 사람이 있다. 박일순이다. 그 역시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다. 종이 가면을 쓰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손바닥 한번 맞대는 것으로 훔쳤다고 착각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군의 동정심을 훔친 그는 그녀의 아픔과 슬픔까지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녀를 도와준다. 수면비행법을 훔쳐 안정실에 갇힌 영군을 구해주기도 하고, 다른 여자의 요들송 부르는 솜씨를 훔쳐 그녀를 위해 노래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싸이보그라서 안돼. 고장이 나” 라며 먹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꾀를 낸다. 밥을 전기에너지로 만드는 기계를 개발했다며 영군의 몸 안에 거짓으로 그것을 장착한다. 혹시 몸 속의 기계가 고장 날까 두려워 하는 영군에게 일순은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보장하면서 “싸이보그지만 먹어도 괜찮아”라고까지 말해 주는 천사가 된다.

영군은 싸이보그의 칠거지악을 하나 둘 어기고 만다. 일순과의 키스에 가 설레고, 그에게 감사하며, 알프스에서 할머니를 만나는 상상을 한다. 결국 싸이보그가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이 싫어 정신의 끈까지 끊어가며 싸이보그가 된 그녀가 칠거지악을 어기면서까지 인간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었다. 요양원에 끌려가면서 할머니가 말한, 영군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존재의 목적인 '10억 볼트의 전기' 역시 그것이었다. 이 우스꽝스럽고, 감독 말대로라면 '뒤죽박죽'인 우화는 그렇게 별난 방식으로 어린아이 마음 같은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영군과 일순을 정신병자로 만든 것 역시 잃어버린 그 순수 였는지 모른다.

그것으로 영화는 끝인가. 개운하지 않다. 그렇게 단순한 박찬욱이 아닌데. 뭔가 있다. 가만히 귀 기울이니 들린다. “당신이야말로 싸이보그 아니야? 동정심은 온데 간데 없고, 상대에게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냉정한데다 죄책감을 느끼기를 하나, 감사하는 마음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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