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트리비자스 글, 헬린 옥슨버리 그림ㆍ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발행ㆍ32쪽ㆍ8,000원
“혹시…” 맞다. 바뀌었다. <아기 돼지 세 마리> 의 돼지와 늑대의 역할이. 통통하고 귀여운 아기 돼지는 ‘못된 돼지’로, 돼지를 괴롭히던 늑대는 소심한 아기 늑대들로 말이다. 아기>
첫 장면부터 낯설다. 아기 늑대들한테 살 집을 지으라며 독립을 권하는 엄마 늑대는 무척 한가롭게 손톱 손질 중이다. 못된 돼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도와줄 마음은 없는 듯 하다. 서로 못 미더워 보이는 아기 늑대들은 그래도 열심히 집을 짓는다. 벽돌집, 콘크리트집, 강철판 집…. 하지만 그때마다 돼지가 나타나 쇠망치로, 기계로, 다이너마이트로 집을 부순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다. 돼지는 늑대들을 잡아먹겠다는 게 아니라(식습관 상 그럴 수도 없지만) 집에 좀 들여보내 달라는 것이다. 아기 늑대들의 대답도 “우리 집에서 차 마시는 건 꿈도 꾸지마”이다. 집이 무너질 때도 찻주전자를 챙겨 피하는 늑대들에게 차를 함께 마신다는 건 친구가 된다는 의미일 게다. 결국 계속 거절 당하니 돼지의 심술은 커질 수밖에….
책은 늑대는 나쁘고 돼지는 착하다는, 오래된 설정을 과감히 비튼다. 하지만 단순한 선악의 뒤바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패러디가 아닌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데다 원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흐뭇한 결말이 준비돼 있다. 힌트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정도.
심술궂은 돼지와 순진한 아기 늑대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건 그림 덕이다. 그 익살맞고 따뜻한 느낌이 어딘지 익숙하다고 생각된다면 베스트셀러인 <곰 사냥을 떠나자> 를 이미 읽은 독자겠다. 둘 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이 미술학교에서 만난 부인 헬린 옥슨버리의 작품이다. 곰>
매력적인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인지 양장과 팝업북이 함께 나왔다. 다소 아기자기하지만 돼지의 집 부수기는 실감난다.
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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