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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한밤의 이별굿' 쓸쓸하다 훈훈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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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한밤의 이별굿' 쓸쓸하다 훈훈해지는

입력
2006.12.0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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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8일 사흘 동안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는 <행인 두부의 마음> 이라는, 낯선 어감의 연극 한 편이 조용히 공연됐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가 마련한 이 연극은 일찍이 신주쿠 양산박의 연극들로 우리에게 알려진 재일교포 3세 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2인극이다. 그의 작풍을 <천년의 고독> <인어 전설> 등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다소 의외로 느껴질 수 있다.

<행인(杏仁) 두부> 란 일본인이 즐기는 비교적 대중적인 디저트로, 우유 젤리에 가깝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도시 한 쪽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극중 인물의 삶과 닮은’ 데가 있어 제목을 붙였다 한다. 우리라면 엎치락뒤치락 눈물 콧물로 ‘징하게’ 그려낼 이야기가 장국에 생김을 푼 듯 담백하기만 하다.

연극은 부부가 갈라서기 직전 짐을 가르는 한밤을 다룬다. 만사 털털한 여자와 만사 꼼꼼한 남자가 7년을 함께 살면서 부딪친 일이 좀 많았겠는가. 연극은 이들 부부의 진정한 이혼 사유가 관객에게 밝혀지는 것을 지연시키는 수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젊은 날 배우를 꿈꿨던 여자에게 기대어 자연스럽게 체홉의 <벚꽃 동산> 이 끼어들고, 체홉의 연극 속 다양한 인물 군상과 대사를 빌어 눈은 울되 입가엔 웃음을 띠게 하는 방식으로 섬세하게 교직해 간다. 우리 일상에 이토록 많은 안타까움이 있었던가? 평범한 삶에도 가면 쓰고 살아야 하는 아픔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99년 서울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 <호기우타(壽歌)> 의 여주인공 가하시 가코와 나고야의 극단 인공자궁 소속 우사미 도오루는 과거에 고착되어 성장을 멈춘 두 인간형을 오밀조밀 친근하게 표현해 냈다. 연출은 희곡만 읽어서는 발견이 불가능한 다양한 말하기의 위장과 리듬 찾기를 통해 장면과 상황에 꼭 맞는 화법을 다채롭게 구사함으로써 2인극의 단조로움을 훌륭히 극복해 냈다.

연극은 내내 시간이 인간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그리고 때로는 치유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그 가장 잔혹한 속성을 마주하게 한다. ‘춥다’로 시작한 이 부부의 한밤 이별굿은 따스한 포옹으로 끝나는데, 관계를 봉합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삶이 남긴 흉터와 소멸로 서로를 가여워하는 것이기에 그 온기는 쓸쓸하고 처연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송년 시즌에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기에 꼭 어울리는 연극일지도 모르겠다. 기국서 연출로, 같은 작품이 지금 대학로에서 공연 중이다. 스튜디오 76, 12월 31일까지 이영숙, 양영조 출연.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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