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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4년만에 새 시집 '부끄러움 가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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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4년만에 새 시집 '부끄러움 가득' 출간

입력
2006.12.0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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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너와 함께/ 살았다/ 아니/ 이제까지/ 너한테/ 너무 많이 얻어먹고 살았다// 달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누나는 어디로 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달하 나는 뻔뻔스러운 건달이다 이제 너 팍 져버려라”(<달밤> 전문)

그는 자꾸 부끄럽다 했다. 수줍고, 객쩍고, 수치스럽다 했다. 교정지를 보다가 문득 부끄러워 시집 제목마저 부끄럽다고 붙였다 했다.

고은(73) 시인이 새 시집 <부끄러움 가득> (시학ㆍ1만원)을 냈다. 2002년 발표한 <늦은 노래> 이후 4년 만이다. “소녀 같은 수줍음과 인간의 본원적인 수치,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합니다. 세상에 대한 예의와 겸손함 같은 것도 내포돼 있고요.”

부끄러움과 참회, 생명에 대한 애닮음. 평화에의 갈구가 누구도 정확히 세지 못하는 그의 70여번째 시집을 가득 채웠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곳곳에서 눅진하다. “딸이 오는 날/ 제라늄화분 여섯이/ 일제히 꽃들을 피웠다// 딸이 가는 날/ 늙은 내 손가락 흠뻑 벴다”(<그 아비> 전문)고 노래할 때, 그는 무엇보다 ‘아버지’로 앞선다.

다섯 편의 시조와 꿈에서 지은 두 편의 시가 포함된 시집에는 작가 서문도, 해설도 없다. 대신 시인이 직접 그린 표지 그림이 독자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시 자체로 나가고 싶었어요. 다섯손가락 다 나와 있는 장갑보다 벙어리 장갑이 좋잖소. 시라는 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른 건데 해설을 붙이면 한 사람의 독법에 모두가 규정당하게 되니까. 옷을 입지 않은 맨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시인, 작가들이 자꾸 정치적 언성을 높여가는 요즘의 형국을 반긴다고 했다. “일본의 경우 시단이 사회적 게토예요. 아무도 누가 어떤 시를 쓰는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인들이 자꾸 사회에 대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갈등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에요. 갈등이 없으면 그건 세상이 아니라 죽음이지.” 시인들의 정치ㆍ사회적 발언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그는 “내년부터는 나도 다시 내 목소리를 낼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대선 같은 정치적 이슈에 개입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건 내 체질에 안 맞으니까. 하지만 북핵 같은 평화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할 말을 할 겁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너는/ 나의 현재이냐// 오늘밤도 나는 백년 지진의 여진으로 덜덜덜 떨고 있다.”(<북한> 전문)

노벨문학상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스웨덴에서 내 세 번째 시집이 나왔는데, 표지에 ‘내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씌어있다고 합디다. 이런 식이니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싫어하겠어요. 나와 관계 없는 곳에서 비롯된 일들이라 나는 아는 게 없어요. 자꾸 설쳐대면 누가 좋아하겠소. 그 얘긴 그만합시다.”

난생 처음 써보는 시조는 아직 어린애 같은 수준이라고 몸을 낮췄다. “이른바 자유시로 세월을 보낸 사람에게 3행의 규범을 던지니 서투르지요. 하지만 앞으로 시조뿐 아니라 향가, 고려가요 같은 시 형식을 계속 현재화해갈 계획입니다. 소중한 유산을 국문학사의 대상으로만 둘 수는 없죠.”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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