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1919~1987). 2차대전 말기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지만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대계 이탈리아인이다. “죽음보다 나쁜 테러의 목격자”였던 그는 자전적 단편집 <주기율> 등 다수의 소설과 비평집을 발표하며 지옥의 시대를 증언했고, 비교적 평온하고 낙관적인 삶을 살다 67세 되던 어느 봄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 아직 소개된 게 없다. 주기율>
서경식씨의 에세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는 <디아스포라 기행> 등 여러 책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그의 이름을 국내에 알려온 저자가 아예 그를 중심에 놓고 쓴 책이다. 책은 레비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세이 형식이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 역시 독자의 영혼을 고통스러운 자리로 인도한다. 디아스포라> 시대의>
그는 전쟁 전후(前後)의 유럽 정세, 인간 사회의 ‘불순물’로 낙인 찍힌 유대인의 역사, 나치 학살의 현장과 희생자들의 기록을 처연하게 되짚어간다. 발터 벤야민, 슈테판 츠바이크, 철학자 장 아메리…. 또 시인 윤동주와, 무고한 간첩 혐의를 쓰고 모진 고문과 장기 옥살이를 겪어야 했던 저자의 두 형(서승, 서준식), 그리고 이 시대 모든 디아스포라들의 고통을 응시하며 여정은 이어진다.
78년 수면제를 먹고 돌연 자살한 독일계 유대인 장 아메리. 그는 자살하기 2년 전 발표한 책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자살에 대하여> 에서 자살이라는 행위의 사회적 복권을 시도한다. “자살은 부조리한 것이긴 하나 허튼 짓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살의 부조리성이 삶의 부조리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173쪽) 아메리와 서신을 통해 교분을 쌓았던 레비 역시 9년 뒤 자살한다. 불가리아 출신 지식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레비의 죽음 뒤에서 수치를 발견한다. 기억의 수치, 살아남은 자의 수치, 인간이라는 수치! 자신에게>
저자는, 아우슈비츠 해방 이후 세상은 아우슈비츠를 망각해왔다고 말한다. 독일 수정주의자들의 나치 복권 시도, 유대인의 조국 이스라엘의 “미숙한 파시즘적 선회” 등을 보며 느꼈을 인간으로서의 수치에 자살로 항거한 레비처럼, 저자는 과거의 죄를 망각해가는 이 현실의 어두운 미래를 고발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서 ‘망각’의 반대말이 ‘희망’임을 호소한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레비의 삶과 죽음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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