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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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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입력
2006.12.0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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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1919~1987). 2차대전 말기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지만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대계 이탈리아인이다. “죽음보다 나쁜 테러의 목격자”였던 그는 자전적 단편집 <주기율> 등 다수의 소설과 비평집을 발표하며 지옥의 시대를 증언했고, 비교적 평온하고 낙관적인 삶을 살다 67세 되던 어느 봄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 아직 소개된 게 없다.

서경식씨의 에세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는 <디아스포라 기행> 등 여러 책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그의 이름을 국내에 알려온 저자가 아예 그를 중심에 놓고 쓴 책이다. 책은 레비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세이 형식이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 역시 독자의 영혼을 고통스러운 자리로 인도한다.

그는 전쟁 전후(前後)의 유럽 정세, 인간 사회의 ‘불순물’로 낙인 찍힌 유대인의 역사, 나치 학살의 현장과 희생자들의 기록을 처연하게 되짚어간다. 발터 벤야민, 슈테판 츠바이크, 철학자 장 아메리…. 또 시인 윤동주와, 무고한 간첩 혐의를 쓰고 모진 고문과 장기 옥살이를 겪어야 했던 저자의 두 형(서승, 서준식), 그리고 이 시대 모든 디아스포라들의 고통을 응시하며 여정은 이어진다.

78년 수면제를 먹고 돌연 자살한 독일계 유대인 장 아메리. 그는 자살하기 2년 전 발표한 책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자살에 대하여> 에서 자살이라는 행위의 사회적 복권을 시도한다. “자살은 부조리한 것이긴 하나 허튼 짓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살의 부조리성이 삶의 부조리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173쪽) 아메리와 서신을 통해 교분을 쌓았던 레비 역시 9년 뒤 자살한다. 불가리아 출신 지식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레비의 죽음 뒤에서 수치를 발견한다. 기억의 수치, 살아남은 자의 수치, 인간이라는 수치!

저자는, 아우슈비츠 해방 이후 세상은 아우슈비츠를 망각해왔다고 말한다. 독일 수정주의자들의 나치 복권 시도, 유대인의 조국 이스라엘의 “미숙한 파시즘적 선회” 등을 보며 느꼈을 인간으로서의 수치에 자살로 항거한 레비처럼, 저자는 과거의 죄를 망각해가는 이 현실의 어두운 미래를 고발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서 ‘망각’의 반대말이 ‘희망’임을 호소한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레비의 삶과 죽음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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