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승마 종합마술 대표팀의 김형칠(47ㆍ금안회) 선수가 경기 도중 말에서 떨어지면서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 등 국제종합대회에 출전해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형칠 선수는 7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승마클럽에서 열린 2006 도하아시안게임 종합마술 이틀째 개인ㆍ단체 크로스컨트리 경기 도중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은 뒤 선수촌 인근 하마드 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오전 10시50분께 사망했다.
이날 사고는 2.7㎞ 거리의 코스에서 23개의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크로스컨트리 경기 도중 김형칠 선수가 출발 1분50초 만에 8번째 장애물을 넘다 일어났다. 속도를 내던 말의 앞다리가 장애물에 걸리면서 위에 타고 있던 김형칠 선수가 앞쪽 땅바닥에 떨어졌고 이어 속도를 이기지 못한 말이 장애물 위로 거꾸로 넘어지면서 500kg에 달하는 말의 엉덩이가 김형칠 선수의 머리를 짓눌렀다. 병원측은 사인이 두개골 골절로 인한 과다출혈이라고 밝혔다.
승마 대표팀의 최고령인 김형칠 선수는 승마 경력 31년에 아시안게임만 5번째 출전한 베테랑. 한국 승마선수로는 처음으로 용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승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또 금안회 원장으로서 후배들 양성에 힘을 써왔다. 김형칠 선수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승마 1세대 김철규(작고)씨의 아들로 86년 서울아시안게임부터 줄곧 태극마크를 단 한국 승마의 대들보였다. 그러나 대회 때마다 말이 부상을 당하는 등 말썽을 부려 메달과는 크게 인연이 없었다.
86년 서울대회 때 장애물 경기에 출전해 단체전 동메달을 땄고, 2002년 부산대회에서는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3형제 중 둘째인 김형칠 선수는 칠순노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며 출전을 강행, 이번 대회를 은퇴 무대로 삼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날 용인 죽전의 집에서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 소원미(41)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때마침 딸 민지(11)양이 학교에서 돌아와 집안이 온통 눈물바다가 됐다. 소씨는 “정말 성실히 살았던 사람이었어요. 엊그제 전화에서는 ‘이번에는 꼭 우승해 아빠 체면을 살리겠다’고 할 정도로 자상한 아빠였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소씨와 초등학생인 아들 민섭(10), 딸 민지가 있다.
도하(카타르)=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폭우로 질퍽한 그라운드서 점프하다…
승마 종합마술에 출전한 김형칠(47ㆍ금안회) 선수가 도하 승마클럽에서 벌어진 크로스컨트리에서 스타트한 것은 7일 오전 10시1분(현지시간). 이날 오전 도하에는 폭우가 내려 그라운드가 질퍽한 상태였다.
32명 중 11번째로 출발한 김 선수는 8번째 장애물에서 사고를 당했다. 장애물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 말이 먼 거리에서 점프한 탓에 앞다리가 장애물 끝에 걸린 것. 김 선수가 앞으로 튕겨나가 말에서 떨어졌고, 이어 공중에서 한바퀴를 돈 말의 엉덩이 부분이 김형칠의 머리를 짓누르며 강타했다.
박원오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는 “500kg의 말에 깔린 김형칠 선수는 머리에 이미 상당한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크로스컨트리는 위험한 종목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헬멧과 가슴 보호 장구를 착용한다. 그의 헬멧은 충격 속에서도 벗겨지지 않았으나 말의 무게를 견뎌내지는 못했다. 대표팀 주치의 박원하씨는 “X레이 필름을 확인한 결과 심한 두개골 골절이 직접 사인이다. 두개골 출혈이 있었고, 코를 통해서도 심한 출혈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고가 난 8번 장애물은 높이 1m10의 계단식 장애물로 전체 장애물 가운데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이번 대회는 국제승마대회의 난이도 등급을 나누는 기준 가운데 CCI ‘원스타 클래스’로 최고 수준인 ‘포스타’ 대회보다는 난이도가 떨어지는 대회였다. 박 이사는 “경기 전 비가 많이 내려 천천히 가자고 했고, 김형칠 선수는 7번째 장애물까지는 편안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그라운드 컨디션은 나쁜 편이 아니었으나 다만 전날 마장마술 성적(25위)이 좋지 않아 조바심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칠 선수는 앰뷸런스에서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받으며 20~30분 거리의 하마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를 담당한 미국인 의사는 “이미 병원에 도착했을 때 사망한 상태였다.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10시50분 김형칠 선수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이날 사고를 두고 ‘폭우 속 경기 강행’에 문제가 없었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기후가 좋지 않았는데 경기를 강행한 것은 아닌지 무리한 게임 스케줄 때문에 기수와 말이 피곤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렀는지에 대해 대회 조직위측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고가 난 말은 ‘밴디’의 이름을 가진 호주산 서러브렛종으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딸 때 김형칠 선수가 탔던 ‘애마’였다. ‘밴디’는 사고 당시 다리가 부러져 승용마로서의 수명이 다해 안락사 될 예정이다.
● 종합마술 크로스컨트리란?
종합마술은 마장마술, 크로스컨트리, 장애물 비월을 3일 동안 하루에 한 종목씩 겨뤄 순위를 결정한다. 크로스컨트리는 기수가 말을 몰고 1분에 600m의 속도로 달려야 하기에 항상 낙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틀째 열리는 크로스컨트리는 대회마다 다르지만 보통 7, 8㎞의 거리를 달리며 30~40개의 장애물을 뛰어 넘는다. △장애물을 떨어뜨릴 경우 △규정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할 경우 △낙마할 경우 감점된다. 이번 대회는 2.7㎞의 코스를 돌도록 돼 있는데 김형칠 선수는 8번째 장애물에서 사고를 당했다.
도하(카타르)=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7일 사고 직후 메인미디어 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김형칠 선수의 장례를 대한올림픽위원회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체육훈장을 추서할 예정이고, 국립묘지 안장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길 회장은 “김형칠 선수의 갑작스런 사고로 선수들이나 국민들이 충격을 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선수단은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다른 종목에서 최선을 다해 종합 2위를 지키도록 하겠다. 그것이 고인의 뜻에 부합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김 선수의 분향소를 8일 오전 태릉선수촌에 설치하기로 했고, 대회 조직위원회측도 이날 경기장별로 1분간 묵념을 실시했다.
△ 낙마사고로 숨을 거둔 김형칠 선수의 시신이 안치된 하마드 종합병원에는 한국승마대표팀 선수들과 대한승마협회 직원 10여명이 자리를 지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사고 뒤 남은 경기를 포기하고 병원에 온 선수들은 응급실 앞에서 1시간 동안 서있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올렸다. 대표팀 선수들은 7일과 8일 남은 종합마술 경기는 포기하고 11일과 12일 열리는 개인 및 단체 장애물 경기에는 출전하기로 했다.
대표팀의 김홍칠 코치는 “김형칠 선수가 은퇴 뒤 지도자로 남고 싶다고 했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박원오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는 “대회 기간 중 김형칠 선수가 내 휴대폰을 빌려서 부인 소원미씨와 매우 자주 통화했다. 하루에도 2, 3번씩 국제전화를 했는데 ‘전화비가 너무 많이 나와 미안하다’며 멋쩍어 했다.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렇게 통화를 자주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용인 죽전 집에서 비보를 접한 부인 소씨는 이날 오후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러 카타르 도하로 출국했다.
△ 도하아시안게임을 취재 온 각국의 뉴스 통신사들은 7일(한국시간) 승마경기 도중 낙마해 숨진 김형칠 선수의 사고를 긴급 보도했다.
AFP통신은 김형칠 선수가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긴급(Urgent)’으로 타전했고 로이터, 신화통신 등도 속보로 사고 소식을 전했다. 특히 AFP통신은 ‘비극이 아시안게임을 엄습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대회기간 김형칠 선수를 포함해 모두 8명이 교통사고 등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한편 김 선수의 낙마 사망사고가 일어난 뒤 이란 기자단이 한국기자단에게 애도를 표하는 전문을 보냈다. 이란 기자단은 <케이한 스포츠> 의 캄비즈 후시만드 기자 등의 명의로 보낸 전문을 통해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고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 김형칠과 그의 승마 기술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 할 것”이라고 조의를 표시했다. . 케이한>
타종목 선수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침통한 분위기. 탁구 혼합복식 결승이 예정된 알아라비 실내체육관 옆 연습장에서 경기를 앞두고 이정우-이은희조의 훈련을 지휘하던 현정화 여자 대표팀 감독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또 선수들은 경기 중에도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 승마 사고 사례
수 억원을 호가하는 말과 영국신사를 연상케 하는 근사한 복장, 장애물을 사뿐히 넘는 우아한 동작까지. 승마가 귀족 스포츠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지기 일쑤다. 기수가 말에서 떨어지면 곧바로 머리나 목을 다치기 십상인 데다 무게 500㎏이 넘는 말에 깔릴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리브는 지난 95년 말에서 떨어져 목을 다치는 바람에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결국 리브는 휠체어에 의지한 삶을 살다 2004년 10월 52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호주의 대표적인 승마 명문인 올리버가(家)의 아버지 레이 올리버와 아들 제이슨 올리버는 승마경기 도중 말의 앞다리가 구부러져 그대로 땅바닥에 추락,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와 형은 말을 타다가 비명횡사 했지만 대미언 올리버는 지금까지도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호주의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승마 선수로 올림픽에도 참가한 앤 공주를 어머니로 둔 영국 왕실의 자라 필립스도 절친한 친구를 승마사고로 떠나 보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8월 필립스의 친구는 승마 경기 중 낙마한 뒤 머리를 말발굽에 채이는 바람에 즉사했다.
학창 시절 마장마술과 장애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삼성전자의 이재용 상무도 불의의 부상으로 승마선수의 꿈을 접었다. 이 상무는 대학 때 장애물 시설경기 도중 말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 대부분의 승마 사고는 고속 질주하다 기수가 말에서 떨어진 뒤 지면과 맞닿으면서 뼈 골절상을 입거나 전신마비에 의한 합병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김형칠 선수처럼 말에 짓눌려 두개골 골절로 사망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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