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0년부터 서울 강북 출신 학생이 강남 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서울 지역 모든 일반계 고교에 ‘선 지원, 후 추첨’ 방식이 적용되는 등 학생 배정 방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교원단체에서는 “고교평준화 재검토가 우선 돼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어 예정대로 시행될 지는 불투명하다.
서울시교육청은 7일 동국대 박부권 교수(교육학과)팀에게 연구 용역을 의뢰한 ‘서울시 후기 일반계 고교 학교선택권 확대 방안’ 최종 보고서를 공개했다.
박교수팀은 6월 발표한 학교선택권 4가지 방안 중 서울 전역(단일학군)의 고교를 1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1안을 최적의 안으로 확정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2010년부터 고교 입학 예정자는 원서접수 때 1단계 2곳, 2단계 2곳 등 희망학교 4곳을 고르도록 했다. 1단계에서 학교 당 전체 정원의 30%, 2단계는 거주지 학군(일반학군)에서 정원의 40%를 선 지원 후 추첨으로 뽑는다. 3단계에서는 거주지 학군을 포함한 인근 학군(통합학군)에서 나머지 30%를 교통 편의 등을 고려해 근거리 추첨 배정으로 채운다.
단 서울시청 중심 반경 5km에 있는 현행 중부학군은 1단계에서 전체 정원의 60%, 2단계에서 40%를 선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보고서는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학생수가 부족한 종로구 중구 용산구 현실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단일학군 시행을 전제로 모의 배정을 해 본 결과 90% 이상의 학생이 거주지 내 학교를 선택해 원거리 배정의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강남 학교 집중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총과 전국교직원노조 등 양대 교원단체에서는 “학교의 서열화 등 부작용이 빚어질게 뻔하다”며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일반계고 학교선택권 방안 탐색을 위한 공청회를 연데 이어 학부모 등 대상의 여론조사를 거쳐 내년 2월까지는 최종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강남·북 교육격차 해소" 36년만에 손질
서울시교육청이 7일 발표한 학교선택권 확대 방안은 학생이 거주지역과 상관없이 희망 학교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게 포인트다. 2010년 시행이 확정될 경우 1974년 도입된 서울 지역 학군은 36년만에 획기적으로 바뀐다.
●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
현행 서울지역 후기 일반계 고교 배정 제도는 매우 단순하다. 우선 ‘중부학군’으로 불리는 서울시청 반경 5㎞ 이내 37개 고교의 경우 선(先) 지원, 후(後) 추첨 방식을 쓴다. 추첨에서 탈락하면 거주지 기준 해당 학군 내에서 교통편 등을 고려해 다시 배정이 이뤄진다.
하지만 새 배정제도가 시행되면 선 복수지원 대상 학교는 서울 시내 모든 일반계 고교로 확대된다. 산술적으로는 중3학생들이 서울 지역 모든 일반계 고교 지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양천구 목동 중학교에 다니는 K군의 경우 평소 가고 싶었던 종로구 A고, 강남구 B고, 강서구 C고, 양천구 D고 등을 차례로 1, 2단계로 나눠, 각 1, 2순위로 지원할 수 있다. 이 때 희망학교가 거주지 학군 내 학교라면 1단계와 2단계에 중복 지원할 수 있다.
세부 배정 방식은 이렇다. 각 고교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1단계 정원의 30%를 추첨한다. 그리고 2단계 추첨을 통해 정원의 40%를 해당 학군 내 지원자로 채운다. 마지막 30%는 고교의 해당학군과 인접학군 내에 있는 학생을 교통 편 등을 고려해 근거리 배정 원칙에 따라 채우게 된다.
● 학군 왜 조정하나
사실 서울 지역 고교 학군 조정 문제는 교육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일반계 고교 추첨 배정제도가 도입된 이후 도시개발 정책과 교통 환경의 변화로 ‘학군의 이합집산’은 수 차례 있었지만 거주지를 기준으로 해당 학군 내에서 학생을 강제 배정하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교육 환경이 급변하면서 학군 조정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입시 정책 변화와 함께 강남 지역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학교 시설 규모에서도 차이가 나는 등 강남과 비강남 지역 학교 사이에 교육 격차가 커지자 거주지 기준 강제 배정 방식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교육청이 현행 학군제를 뜯어고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불과 1년4개월여 전이다. 지난해 8월 당시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국회에 출석, “부동산 해결 차원에서 학군 조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부터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육을 건드리는 게 과연 옳으냐는 논란이 제기되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직접 나서 “선복수지원 대상 학교 수를 늘려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해 주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언급했다.
시교육청은 학군과 관련한 여러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해 11월 동국대 교육학과 박부권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맡겼다. 연구팀은 올해 6월 4가지 후보안을 제시한데 이어 7월 모의배정(시뮬레이션) 등을 거쳐 이날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갈 길 먼 학군조정
이르면 2010년부터 서울 지역 고교 지원 방식이 확 바뀌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갈길은 멀다. 일선 교육 현장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당장 당면한 과제가 있다. 서울 전역에서 지원 고교를 선택토록 함으로써 선호학교와 이른바 ‘기피학교’가 뚜렷해져 정원 미달 학교가 속출할 수 있다 또 기피학교에 배정받은 학생과 학부모 불만을 해소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강남 부동산 값이 되레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강북 학생들이 강남 고교로 가게되면 전세 및 매매 수요가 급증해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한재갑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고교 평준화 정책 재검토 없이 이뤄지는 학교 선택권 보장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부모들은 지역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초등 6학년 아들을 둔 이모(41ㆍ여ㆍ서울 성북구 종암동)씨는 “강남 지역 고교로 보낼려고 했는데 잘 됐다”고 반겼다. 정모(40ㆍ서울 강북구 미아동)씨는 “강남으로 이사하지 못할 처지의 가정에는 실효성이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강남권 주민들은 ‘역차별’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압구정동 김모(42)씨는 “강남 학생들이 통학하기가 힘든 학교로 밀려나는 등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중3 10만2,524명 대상 모의배정 결과
동국대 박부권 교수 연구팀이 7월 서울 지역 중3 학생 10만2,5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의 배정(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흥미로운 점 두 가지가 눈에 띈다. 강남 학군에 지원자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고, 중부 학군의 경우 1단계 정원을 60%로 하지 않으면 정원 충원이 힘들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강남학군 고교 정원의 30%를 타 학군 중3에 개방한다고 가정해도 전체 강남학군에 추첨 배정되는 학생 중 타 학군 지원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남녀 각각 10.9%(821명), 11.1%(713명)였다. 연구팀은 “강남학군 중3이 강남학군 고교에 전부 지원하더라도 남자 1,163명, 여자 874명이 정원에 미달하므로 이 정도의 집중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남의 집중 현상이 높을 것으로 예상해 마련했던 제3안과 제4안이 결정적으로 탈락한 이유였다. 제3안은 통합학군 내 고교를 1, 2, 3지망 후, 제4안은 일반학군 1, 2지망ㆍ통합학군 1, 2지망 후 추첨 배정하는 방식으로 자기 거주지에서 멀리 벗어난 학교는 사실상 지원할 수 없도록 한 안이다.
또 하나는 선복수지원 대상 학교가 몰려 있는 중부학군의 경우 다른 일반 학군과 배정 비율을 다르게 했다는 점이다. 타 일반학군은 1단계 30%-2단계 40%-3단계 30%로 지원자 배정 비율을 조정하고 있지만, 중부학군은 1단계에서 정원의 60%, 2단계에서 나머지 40%를 뽑는다. 다른 일반학군보다 문을 더 열어 놓은 이유는 이 지역에 부족한 학생 수를 채우기 위해서다.
중부학군에 해당하는 서울시청 반경 5㎞ 내 37개 고교는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정원 미달 현상이 발생할 소지가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중부학군 정원 개방률을 70%로 조정하자 중부학군 거주 중3 여학생들이 타 지역 고교로 ‘밀려가는’ 현상이 나타났고, 50%로 했더니 남자 정원이 약 1,000명 미달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중부학군 ‘1단계 배정율 60%’는 이런 ‘시행착오’ 끝에 확정됐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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