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남대문시장 속을 지나갔다. 가게들에도 리어카들에도 좌판들에도 물건이 그득했고 장보러 온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외국인도 많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서양 처녀와 오십대 아저씨 아주머니가 멋진 가죽점퍼를 주렁주렁 걸어놓은 가게 앞에서 발을 멈추고 솔깃한 표정으로 물건을 살폈다. 그들은 관광객 같았다. 내 보기에도 질 좋은 가죽점퍼들인데, 백화점보다 사뭇 싼 가격일 테다. 히틀러 스타일 콧수염을 기른 키 작은 외국인 남자도 눈에 띄었다.
한 손엔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천천히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그는 이곳 체류자 같았다. 좀 우울하고 추워 보였지만 남대문 시장이 익숙한 듯 유유했다.
목도리와 솜바지, 식탁보, 때수건 등을 올려놓은 좌판이 촘촘히 이어진 좁은 길로 들어섰다. 발 디디기가 불편하게 거의 일렬로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니까 치우라구." "깔렸는데 어떻게 치우란 말이야? 물건 다 망가지잖아!" 미화원 아저씨가 끄는 초록수레 바퀴에 좌판 귀퉁이가 깔려 있었다. 좌판 상인들의 원성에 아랑곳없이 아저씨는 묵묵히 수레를 끌면서 지나갔다. 좀 심술궂게.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