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전국 13개 도시에서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많은 공공시설물이 파괴되었고 방화도 있었다. 특히 대전에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벌어진 불법과 폭력은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충남도청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불타오르는 장면은 차라리 TV 보도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죽봉과 각목이 휘둘러지는 가운데 살벌하게 대치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부상자들도 속출했다. 시위대는 법을 지킬 생각이 없었고, 경찰도 대응 준비가 부족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심정은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며 실험 중인 것인가. 얼마 전 미국의 유력 신문이 비아냥거리듯 언급한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어린(young) 민주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물론 원인이 있기 때문에 시위를 시작했을 것이다. 따라서 시위 자체를 탓하거나 나무랄 생각은 없다. 아니, 오히려 일방적으로 전개되는 현실을 방관할 수 없어서 거리로 뛰쳐나온 그 답답한 심정을 이해한다.
사회 시스템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할 때 그것을 소리 높여 비판하는 것은 시민의 정당한 권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든, 노동 조건이든 이익집단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그 어떤 체제보다 소중하고 우월한 것이다. 언제든 찬반이 서로 존재하고 또 그것을 아우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니 어떤 형태로 시위하든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극단적 태도는 정말 곤란하다. 특히 이번 사태와 같은 극렬한 태도와 다소 일방적인 주의 주장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극도로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의 시위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시위란 결국 일방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준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이를 무시할 경우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감정적 골도 깊게 패인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있다.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이나 명백한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시민혁명의 경우가 그러한 예일 수 있다. 그 절박성, 시급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때문에 그 문제제기의 형태적 특이성, 극단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식민지 상태도, 독재국가도 아니다. 우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 사회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마비시키고,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무시하는 폭력적 시위를 용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폭력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던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언제까지 그런 후진적 시위문화를 고집할 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모든 시위자들에게 꼭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시위할 일이 있거든 시위하라! 그러나 불법과 폭력으로 만들어낸 시위 때문에 피해를 입는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에 대한 물적, 정신적 보상도 잊지 말라. 그것이 어려우면 결단코 폴리스 라인만은 지켜 달라. 정부도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이른바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을 천명했다. 지켜볼 일이다.
손풍삼ㆍ순천향대 인문대 교수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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