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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씨네다이어리] 첫 주 대박만이 살길인가

입력
2006.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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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술자리에서 A감독을 만났다. 흥행과는 거리가 멀지만 남다른 감수성으로 연출력을 인정 받고 있는 그는 잔이 몇 차례 돌자 일리 있는 ‘투정’을 늘어놓았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 받는 영화 아무리 만들어도 소용없다. 국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취기가 오른 A감독은 “와이드 릴리스(전국 극장에서 대규모 동시 개봉해 단기간에 수입을 극대화 하는 것) 배급 시스템에 이젠 정말 질렸다. 다음엔 나도 철저한 상업영화를 만들겠다. 그래야 관객과 만날 수 있지 않겠냐”며 울분 섞인 각오까지 다졌다.

국내 본격적인 첫 뮤지컬 영화로 기록될 "삼거리 극장"이 참담한 흥행 성적표를 받았다. 11월23일 개봉해 5일까지 이 영화를 본 관객은 고작 1만7,500명. 평단의 호평에 힘입어 잔뜩 기대했던 제작사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역력하다. 초반 흥행 참패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영화를 장기 상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봉 첫 주 전국 80개 극장에 걸린 <삼거리 극장> 은 지금 3곳서 상영 중이다. 입 소문을 타면 쏠쏠하게 관객이 찾을 영화인데 그럴 기회마저 봉쇄된 것이다.

"삼거리 극장"뿐 아니다. "가족의 탄생" "폭력서클" 등 올해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들이 극장에 언제 걸렸는지 모를 정도로 금세 사라져 갔다. 첫 주에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지 못하면 완성도와는 상관 없이 바로 퇴출되는 불합리함, 와이드 릴리스가 만든 깊고 짙은 어둠이다. ‘패자 부활전’이 사라져가면서 제작사들은 영화의 내실보다 겉포장 꾸미기에 힘을 더 기울인다.

14일 개봉하는 미국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에는 물량과 흥행이 정글의 법칙처럼 지배하는 할리우드의 현실을 꼬집는 한 원로 시나리오 작가의 대사가 나온다. “오늘 9편이 개봉해. 옛날의 한달 개봉 편수야. 지금은 첫 주말에 대박 못 내면 끝이야. 그러니 좋은 작품이 나오겠어?” 요즘 충무로의 부조리한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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