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입법예고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통합한 거대기구를 이끌어갈 위원 5명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토록 한 것은 대통령이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내용이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방송위원회의 경우 대통령이 3명을 선임하고, 나머지 6명을 국회 몫으로 여야가 반씩 나눠 추천함으로써 형식적으로나마 견제와 균형을 갖추게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색깔과 코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판에 기능과 덩치가 훨씬 커진 위원회의 위원 전원을 대통령 1인이 임명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대통령이 임명한 5인이 KBS 이사 추천,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 EBS 사장ㆍ이사 임명 등의 권한을 그대로 갖게 된다면 방송의 독립성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물 건너 가는 셈이다.
더구나 이 법안을 정부가 밀어붙이려 할 경우 내년 대선 정국에서 어떤 파행이 빚어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법안은 또 부처 간 중복 업무에 대한 조정 등 복잡다기한 문제를 적당히 얼버무린 부분이 많아 정치권에서 심의ㆍ토론의 토대로 삼기에도 매우 미흡하다.
법안을 주도한 국무조정실은 7월 말 민간 인사를 다수 포함시킨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으나 이후 논의 과정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로부터 밀실 논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 결과가 당장 이렇게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시대에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큰 틀에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조직 통합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마냥 토론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처럼 방송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조항을 덜렁 집어넣는 식은 곤란하다. 방통 융합이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이유로 서두르는 것은 더더구나 말이 안 된다. 야당의 의견까지 폭 넓고 공개적으로 수렴해 새로 시작하기를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