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무섭게 떨어지고 있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무려 7.9원이나 급락한 916.4원에 마감하며 9년1개월 만에 910원대로 진입했다. 6거래일 연속 하락해 14.40원이나 급락한 것이다.
특히 920원이 하락세를 꺾을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던 터여서 이날 외환시장에는 900원마저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확산됐다. 더 큰 문제는 수출기업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채산성에 비상이 걸렸지만 원화 강세가 달러화 약세에 따른 세계적인 현상이어서 외환당국이 ‘실탄(외환보유고)’을 넉넉하게 비축해놓고도 강력하게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날 외환시장은 초반 급락 후 당국의 개입을 의식한 달러 매수세력 덕에 921원 선을 회복한 후 등락을 거듭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개입 모습이 뚜렷하지 않자, 마감 1시간여를 앞두고 급락세로 돌변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920원 아래에서는 수입업체의 결제용 달러 수요가 유입되기도 했으나 당국의 개입여부가 감지되지 않자, 장막판 역외 투기세력과 수출업체의 달러매물이 폭주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4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칼 아이칸의 KT&G 지분 매각대금이 달러화 수요로 유입되지 않은데 따른 실망성 매물도 낙폭을 키웠다. 달러화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따른 투자자금의 미국 이탈 우려로 엔화에 대해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외환은행 구길모 선임딜러는 “앞으로는 910원, 900원 등이 심리적 저지선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더 이상 뚜렷한 저지선이 남아있지 않다”며 “2년간 반복됐던 연말연시 환율폭락 현상이 재연되는 양상이라 900원 저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구 선임딜러는 또 “현재 수급균형이 무너진 상태이어서 경제상황을 감안한 적정환율을 언급하는 것은 의미 없는 상황이며, 당국도 섣불리 개입했다가 오히려 단기 투기세력을 부르는 역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ㆍ엔 환율도 지난달 23일 이후 근 2주만에 다시 100엔 당 800원선 아래로 하락한 799.83원을 기록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업 "더 버티기 힘들다"
수출기업에 ‘환율 적색경보’가 발령됐다. 일찌감치 환율 손익분기점이 무너져 이미 손해를 감수한 채 물건을 팔고 있던 기업들은 6일 원ㆍ달러 환율 920원선과 원ㆍ엔 환율 800원선이 차례로 붕괴되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수출업계 관계자는 6일 “950원 미만으로는 사실상 수출이 불가능하지만 외국 거래처와의 신뢰 관계를 감안해 그 동안 억지로 물건을 수출해왔다”며 “910원대의 환율은 어떤 방법도 강구해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허탈해 했다.
실제 수출보험공사가 이날 221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은 948.28원이었고 적정수준의 이익 확보에 필요한 환율은 986.61원이었다. 대부분의 수출기업들이 이미 ‘밑지는 장사’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환율 894.31원이 붕괴될 경우 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다.
더 큰 문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원ㆍ달러 환율은 최근 빠른 속도로 전(前)저점이 계속 무너지고 있으며, 어디까지 떨어질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정부 '달러 퍼내기' 나설 듯
정부도 난감하다. 최근 원ㆍ달러 환율 하락이 원화절상보다 세계적인 달러약세에 기인하고 있어 대세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국 외환시장의 규모도 작아 시장의 ‘쏠림 현상’이 워낙 극적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시장에는 웬만한 개입에도 관성이 생긴 상태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당국의 개입성 물량이 나오기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6일 낮 정부 고위당국자의 “실탄은 얼마든지 있다. 내년에 반대쪽 쏠림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에도 환율은 더 떨어졌다.
때문에 외환당국이 정면대응보다 국내 고여있는 달러를 해외로 퍼내는 통로를 열어주는 간접대응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올 3월 해외 주거용 부동산 취득한도를 폐지하고, 5월에 100만 달러 이내 투자용 해외부동산 구입을 허용한 데 이어, 내년 1월부터 이 한도도 300만 달러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수출입에 따른 달러 유출입(경상수지)이 균형수준에 근접함에 따라, 부동산ㆍ증권 투자에 따른 달러 유출입(자본수지)에서 달러를 더 퍼내면 내년부터는 서서히 환율도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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